6.25전쟁 70주년..분단의 이중고와 아물지 않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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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내면 마차진에서 명파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쑥고개라고 한다. 좌측으로 배봉리 들어가는 표지판이 있고 농산물 판매 천막이 남아 있는 그 고개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울창한 숲 앞에 ‘고성부역혐의 희생사건 희생지’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1950년 10월부터 1951년 1월까지 고성지역 주민 수십명이 북한정권기와 인민군 점령시기에 부역자 및 부역혐의자 ,그 가족이란 이유로 수복후 국군에 의해 이곳 현내면 마차진리 쑥고개와 죽왕면사무소 앞 등지에서 집단학살 되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고성지역은 특이한 현대사의 공간이다.해방이후 38선 이북 지역이었다.양양에 38선이 그어지면서 북한 점령지가 되었다.전쟁 발발후 밀리다가 국군이 북진하면서 고성지역을 회복하였고 그 이후도 밀고 밀리는 피비릿내 나는 전투가 벌어지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휴전이 되었다.고성군은 격전지였고 결국 미수복 군으로  분단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이런 특수성 때문에 지역에 남겨진 생채기가 크고 지역민들도 오랜 세월 짓눌려 숨죽이며 살아온 억눌림이 있다.

쑥고개 집단학살은 인공치하를 겪으면서 부역의 낙인에 대한 국군의 보복으로 자행된 것이다.이념에 의해 동족끼리 살육을 했다는 점에서 가슴 아프다.하루 빨리 쑥고개 희생자 진실이 밝혀 지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원혼에 대한 추모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아야진이 고향인 시인 박봉준(朴鳳俊)은 ‘DMZ‘ 란 시에서 “화진포 지나 쑥고개 너머 제진리 여기, 내 본적지 어느 날 그 이십 리 길 한가운데 금 찌익 긋고 염병 떨더니 아버지 엄니 다 돌아가셔도 아직도 넘을 수 없는 저, 기막힌 선 이렇게 읊고 있다.“고 탄식하고 있다.

간성에서 거진으로 가는 방향 대대리 검문소 못 미처 북천을 가로질러 다리가 2개 놓였다.차량은 현재 북천교로만 통행이 가능하다. 그 옆에 통행이 불가능한 다리는 ‘합축교(合築橋) 라고 한다.새로 다리를 놓으면 이전 다리를 없애는 것이 보통인데 그대로 존치하고 있는데 이유가 있다.

이 다리는 1948년 남북이 합작해서 다리 공사를 시작했다.교각 17개중 남쪽에서 9개 북한에서 나머지 공사 중 6.25가 발발해 중단되었다.이후 1960년 한국군 공병대대가 완성해 개통했다가 신축 북천교가 연결되면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남북이 함께 건설하고자 했다는 의미에서 합축교라고 명명되었다고 하는데 의미있는 작명이다.

이곳 합축교에서 둑방길을 따라 북천하구쪽으로 내려가면 북천철교가 나온다.안변-양양간 동해북부선이 다니던 철교다. 원래 철교는 6.25전쟁 중 북한군의 물자수송을 저지하게 위해 폭파해서 교각만 남아있던 것을 2011년 복원해서 완공했다.과거 교각을 보면 흠집이 깊에 나 있는데 총탄 자국이라고 한다. 얼마나 전투가 이곳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간직된 역사적 현장이다.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잘 엮어서 이 지역을 분단견학 코스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우리지역은 이렇듯 여기저기에 분단관련 역사적 현장이 많다. 이들 장소들을 잘 활용하는 것도 여전히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제다.역사적 교훈과 산교육의 장소로 만들어 관광코스로 대중화 할 필요가 있다.

지역이 분단의 참혹한 흔적이 있는 곳이지만 실향민이나 전쟁 및 분단사를 제대로 보존하고 알리는 이렇다고 할 박물관 하나 제대로 없다.거진에 실향민사료관이 있으나 너무 미흡하다.상흔에 비해 기억의 장소가 너무 초라한 모습이 아쉽다.

북한의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폭파로 촉발된 남북긴장관계는 여전히 평화가 멀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성은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분단사의 많은 아픔과 상처를 품고 있고 아물지 않은 상처가 너무 크다.쑥고개 진상 뿐만 아니라 전쟁후 냉전적 이데올로기가 횡행할때 공권력에 의해 지역에서 무고하게 누명을 쓰고 두들겨 맞고 고문을 당하고 죽는 일도 많았고 그 진상은 여전히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역사적 진실의 복원과 무고한 희생에 대한 원혼을 풀어주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6.25 전쟁 70년이 되었지만 고성은 여전히 아픈 지역이다.평화를 모색하는 길과 함께 내부의 상흔들을 어루만져 주는 씻김굿이 필요하다.아울러 분단사의 주요 현장들을 잘 보존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고 알리는 작업도 지역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글: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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