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수 신부의 봉사일기) 저를 찾아온 첫 손님이라며 밝게 웃으시는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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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꿈 중 하나가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저희 전주교구에 무료급식소가 문을 열었습니다.

휴양을 하고 있는 보광사에서 자전거로 10여분 거리에 무료급식소가 있습니다. 글라렛 선교회 수사신부님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가난한 이웃에게 밥과 반찬을 봉사하십니다.

저는 화.목 이틀 봉사를 갑니다. 벌써 두 달이 넘었습니다. 밥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은 각양각색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필요한 반찬만 가지고 가시는 분, 트집을 잡아 다툼을 하시는 분, 겸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하신 분들, 언젠가 저 분이 어떻게 사시는지 찾아뵈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분도 계십니다.

다른 봉사자가 신부님이라고 소개를 하자, 평소에 존경했던 아버님이 마음을 열고 아프고 슬픈, 부끄럽지만 아름다운 과거를 딛고 감사의 삶을 사시는 고백을 하십니다. 봉사를 마치자, 아프지만 아름다운 고백을 하신 아버님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40년 넘게 혈육도 친척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사시는 아버님에게 용기를 내어 점심 때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잠시 후 문자가 왔고 답장을 드렸습니다.

– 감사합니다. 그래도 집까지 오시는 건 제가 불편합니다.

= 아버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저 역시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하고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대리자인 사제가 아니지요.

어제 선물로 들어온, 인삼 튀김과 명태 강정을 조금 데워서 가져갈 겁니다. 하느님이 맺어주신 인연이니, 소중한 인연으로 잘 가꾸어 나가야지요.

아버님이 급식소에서 먼저 마음을 여셨고, 그 사연을 들은 신부가 찾아뵙는 것은 당연한 거죠. 저는 성당에서 사목할 때도, 음식 싸들고 방문을 자주 갔습니다. 아버님께서 시를 쓰신다고 하셔서, 제 시집도 갔다 드리고요. 급식소에서 아버님만 따로 시집을 드리는 것도 보기에 안 좋고요.

아버님 부담 갖지 마세요. 신부가 당연히 방문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지만, 저와 인연을 맺은 분은 사랑해야지요. 하느님께서 맺어준 인연이니까요

인삼튀김과 명태강정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쌀국수와 돼지국밥라면을 비닐봉지에 담았습니다. <사랑해도 모자란 동행> 시집, 유자차, 목도리를 종이가방에 챙겼습니다.

허리가 굽은 아버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계단을 따라 오릅니다. 작은 주방과 방과 화장실, 혼자 살기에는 좋은 집이었습니다. 200만원 보증금에 월세 30만원이었습니다. 보일러는 연중 휴무이고 일인용 전기장판으로 살고 계셨습니다. 애완견과 고양이를 가족처럼 보살피며 지내십니다. 개와 고양이 때문에 석유난로를 피웠는데, 끄름이 많아 집안 공기가 캐캐합니다.

가져간 인삼튀김과 명태강정에 쌀국수 하나를 끓여 급식소 김치 하나 꺼내 아버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오랜 세월을 혼자 사시는 아버님이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바라는 기도를 드리고 식사를 합니다. 28세에 임신 7개월 된 아내를 하늘로 보내고 순애보 같은 동정을 지키며 살아오신, 아프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고백을 듣습니다.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신지 일어나 싱크대에 등을 기대고 서십니다. 종종 환한 웃음꽃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저를 찾아온 첫손님이라며 밝게 웃으시는 아버님과 작별을 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인사를 드리고 말없이 아버님을 꼭 안아드렸습니다. 돌아섰다가 다시 한 번 힘껏 안아드리자, 아버님도 저를 꼬옥 안아주십니다. 42년 동안 혈혈단신으로 살아오신 외로움이 얼마나 깊으셨는지, 조여 오는 가슴에서 뜨겁게 느껴집니다.

글:최종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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