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정서연의 ‘수련’과 영랑호 보광사 용연정의 화사한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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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화가 정서연 '수련'

속초 영랑호 보광사 경내에 아담한 연못이 있다.용연정이라 명명된 이 연못은 인공연못이 아니라 원래 영랑호와 연결된 내밀한 호수였다.허나 영랑호반 길이 조성되면서 물길이 끊겨 연못처럼 돼 버렸다.

연못의 돌다리에 서면 대웅전과 관음바위가 직선으로 연결되면서 기도의 줄이 연결된다.어느날 서울 정릉에서 오신 관광객 서너명이 그 다리에 저녁나절 앉아 있기에 물었더니 “작년에도 왔는데 여기 그냥 앉아 있으면 마음이 그만 편하다.”고 말했다.나도 그렇다.

요즘 용연정에는 연꽃이 화사하다. 스님은 다 시든 줄 알았는데 아침이면 환하게 피는 게 매일 다시 태어나는 듯하다고 말씀하신다.스님 관찰에 따르면 아침 10시가 연꽃이 제일 이쁘단다.마법의 시간이다.몸이 아침에 활기가 나듯 연꽃도 그런가 보다. 아무튼 연꽃의 화사하고 미묘한 색이 배합된 모습은 마치 선녀가 와 있는 듯, 님이 와서 숨죽이고 기다리는 듯 설레게 한다.

오래전부터 속초에서 둥지를 틀고 작업하고 있는 화가 정서연의 수련을 본 것은 보광사의 연꽃을 본 그날 오후였다. 나른한 허기가 지기에 들렀더니 오늘따라 한쪽 벽면에 걸린 수련 작품이 마치 아침 10시 보광사 수련 분위기로 반긴다.그냥 자리에 앉아서 봤는데 연꽃 잎이 그렇게 싱그러울 수 없다.

정서연이 경기도 퇴촌에서 만난 수련이라고 하기에 근접해서 보니 수련 잎새에 물방울이 구르는 듯 멈춰있다.마치 태초의 앞새를 주유하듯이 말이다.물기가 흠뻑 먹은 듯 마치 방금 샤워한 모습처럼 수련의 큰 잎새 두 개가 심장을 멈추게 한다.그리고 용연정의 환한 연꽃이 똑같이 서 있는 게 아닌가. 화가는 완성에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꽃 그리기를 즐겨하는 그로서는 무척 공이 들어간 작품이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수련은 모네의 수련정원의 자태보다도 훨씬 율동적이고 카리스마가 있다. 어릴적 갑자기 소나기를 맞으면 큼직한 연잎을 따서 머리에 받치고 뛰어 가던 여름날도 떠올랐다.수련이 혹독한 더위에 말라버린 가슴을 적셔주는 듯 하다.

엡트강의 물을 끌어다가 수련 정원과 일본식 다리를 조성한 ‘수련 화가’ 모네처럼 보광사 연못에는 돌다리가 있고 항구도시 속초의 정서연 갤러리에는 모네보다 큰 수련이 있다.화가는 보광사 용연정 연꽃을 한번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이래저래 이날 하루는 좀 덜 우울했다.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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