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은 유년의 많은 풍경을 채우는 해산물이다.천진바다 바위돌에도 섭이 많이 있었고 수영을 잘하는 형들이 잠수부처럼 들어가 섭을 한자루씩 캐 오고 했다.섭의 껍데기 색채도 신비롭지만 속은 더욱 더 황홀하다. 섭을 까먹는 재미가 바다의 추억을 소환한다.
그렇게 딴 섭으로 섭죽도 끓이고 섭국도 해 먹었다.불을 피워 놓고 양철떼기를 깔고 섭을 구우면 입이 딱 벌어지며 싱싱한 속이 보물처럼 나오던 장면 생각만 해도 군침 넘어간다.
지역산 섭으로 끓인 섭국은 이제 브랜드가 되었다. 자연산 섭으로 조리해 내는 섭국의 맛은 가히 일품이고 그 등급답게 사랑받고 있다. 섭국을 잘하는 맛집도 여러곳 있는데 양양 ‘해촌’(양양군 손양면 동해대로 2527)에서 모처럼 맑고 담백한 섭국을 먹었다. 양양 남대천 다리 건너 강릉 가는 방향 오른쪽 둔덕에 위치한 해촌은 섭 요리 전문점이다.
옹기에 끓여 나오는 섭국이 도착하면서 섭 특유의 향이 미각을 돋운다. 섭이 싱싱하다는 반증이다. 섭의 선도만큼 향이 나는 법이다.엄지손가락 보다 큰 두툼한 섭이 부추속에 얹혀 있는 모습은 정물 수채화같기도 하다.섭국이니 먼저 국물로 입술을 적셔야 하니 반수저만 살짝 가져온다. 장국물 맛이 없고 아주 담백하다. 섭국이 찌개식으로 진해버리면 텁텁해진다.
잘게 썬 청양고추를 지인이 넣어야 한다고 하기에 종지의 반을 덜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국물을 입에 댔다. 향기가 더욱 독특해 졌다.그러나 무엇보다고 잘 익은 탱탱한 섭을 넣는 순간 입안 전체가 부드러워 졌다. 섭의 끝 부분이 종종 질기면도 있기도 한데 전체가 다 부들부들했다.입안에 진주가 들어 오는 기분이라면 과장된 호들갑일까?
내가 섭국을 즐기는 이유는 부드러운 걸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섭국물이 마치 옹고지탕 국물 맛을 연상하는 측면도 있어 그런 것 같다.서울 포장마차에서 나오는 홍합과 비교자체가 안된다.섭이야 말로 로컬이고 향수다.
그리고 나서는 밥을 말으니 이제 진짜 섭국밥이다. 섭국도 그릇 바닥으로 내려 갈수록 조금은 진해지니 밥을 만 섭국은 적정하게 식어 후루룩 들어간다.
지인이 반찬으로 나온 가자미 구이는 왜 젓가락을 안대냐고 하는 통에 그제서야 정갈한 반찬에 눈길이 갔다. 고소한 풍미의 가자미 맛은 전혀 다른 미각이지만 조화가 되면서 식욕을 더욱 자극한다.양도 푸짐해서 나중에는 좀 남겨야 하나 망성였지만 결국 다 비웠다. 빈 옹기 대접을 보니 참 푸짐한 양이었음이 드러난다.
해촌만의 노하우라면 국물맛의 최적화라고 평가하고 싶다. 양양은 섭국을 지역 특미로 상품화하는데 어느정도 성공한 듯하다. 곳곳에 섭국집이 성업중인데 이런 메뉴야 말로 나그네 발을 꼭 묶는 지역별미다.바다 환경이 잘 보전되어 섭이 많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신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