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와 만화가 사라진 대한민국은 삭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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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방송에서 개그콘서트가 사라진지 4-5년이 된 것 같다. 이제 코미디 프로는 지상파에서 다 사라지고, 모 케이블 방송에서 한 프로가 남아있다. (프로의 실명을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마저도 기존의 개그맨들이 살아남고자 하는 몸부림이지, 더 이상 개그맨을 공채로 뽑는 방송사는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이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되었다는 증거가 TV 방송에도 있다.필자가 어린 시절인 90년대에는 평일 오전 9시 이전에는 ‘뽀뽀뽀’, ‘tv 유치원’, ‘텔레토비’ 등 어린이 프로가 있었고 평일 오후 대여섯시나 주말 아침에는 만화 시리즈가 지상파에 편성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지 모르겠지만 만화를 지상파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시간대에는 시사정치 토크쇼나 다큐, 맛집 기행 등 어른들이 좋아하는 프로로 채워졌다. 어린이들에게 보여줄만한 tv 프로가 지상파나 거대 케이블에선 사라지고, 전문 케이블 방송으로 이동한 것 같다. 그나마도 새로운 만화라기보단 90년대~2000년대에 유행했던 만화들을 다시 보여준다.

개그와 만화도 유행을 타는 법. 시대가 변했고 사람들의 문화가 변했다면 따라가야 되는 것이 문화의 역할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문화는 너무 삭막하다. 어린이 문화는 2~30년 전부터 설 자리를 잃었다. 개그와 유머가 없어지고 ‘너 죽고 나 살자, 내가 손해보면 너도 죽는다’ 라는 정서가 판치고 있다. 뉴스의 정치면을 볼 때 ‘바르지 못하다’ 는 느낌을 받았는데, 사회면을 볼때도 – 사회면은 정치인이 아닌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사건사고다 – 이제는 끔찍하고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마음이 불편하다.

필자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한민국이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무서운 점은 삭막해지고 있다는 점, 한국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점, 개그와 웃음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유행했을 때, 일본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일본의 드라마는 잔혹하고 음모론이 가득하다. 이에 비해 ’겨울연가‘의 주인공 준상(배용준/욘사마)은 지고지순하고 한 여자를 위해 사랑하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반했다’고 한 기억이 난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잔혹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는 그 잔혹함이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점에서 세계인들이 놀란 것이다. 우리는 ‘K-콘텐츠’의 힘이다’ 라고 자랑하고 ‘한류(韓流)가 세계를 뒤덮었다’고 자부심을 느끼지만 필자가 봤을때는 씁쓸하다.

또 K-POP이 인기많고 재밌다고 하지만, 경제적 가치가 떨어졌다 싶으면 은퇴하고 잊혀지는 가수들, 그룹들도 많다. 물론 혹자는 그런 경쟁 속에서 음악적으로 발전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이 달라진 것은 필리핀과 멕시코에서 TV 음악프로를 현지에서 보고 유튜브로도 봤다. 우리나라의 가요 프로그램은 대개 사람들이 앉아있고 무대와 분리되어 있으며, 즐기기보단 ‘네가 얼마나 잘 하냐, 버튼을 누를까?’ 이런 심리로 가득하다.

그러나 필리핀과 멕시코의 가요 프로그램은 객석에서도 사람들이 콘서트처럼 앉아있지 않고 서있으며 환호하며 무대를 즐기며, 때론 가수들이 관객들과 어울리며 섞이는 하나의 축제같은 모습을 보여준다.그리고 필리핀과 멕시코의 유튜브 조회수도 1억회나 몇천만회는 가뿐히 넘긴다. 우리나라 아이돌들의 조회수 몫지 않다. 필리핀은 인구가 1억이 넘고, 멕시코는 스페인어권이기 때문에 더 히트를 칠 수 있다.어쩌면 인구 5천만, 해외동포까지 합쳐서 6-7천만의 한국어 사용자를 보유하고도 한국 콘텐츠들이 선전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성공의 이면에는 개그와 만화가 희생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개그가 사라지니 농담을 해도 먹히지 않고 사람들이 잘 웃지 않는다. 농담을 던지는 사람을 보고 ‘진지하지 못하다’ 라는 평을 내리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의 허물을 내비치는 사람을 ‘실없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한국이 ‘집단적인 우울증’ 증세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인위적으로 웃기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허물이나 약점을 재밌게 드러내고, 그리고 상황에 대한 색다른 관찰을 보일때 함께 공감하면서 웃을 때 진정한 유머이자 재미일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람들은 유머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위에도 얘기했지만 만화가 사라지니 어린이, 청소년들의 정서가 메말라간다. TV 프로나 인터넷, 미디어에서 어른들을 위한 콘텐츠를 일찍 접하다보니, 좋게 말하면 조숙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린이나 청소년다움을 잃어간다. 그러다보니 학교폭력이나 왕따, 괴롭힘 등 청소년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어린이/청소년 문화가 사라진 영향도 크다.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이 한국 문화의 전성기다, 한국 문화가 세계를 휩쓴다 고 하지만 어쩌면 한국 문화의 위기는 지금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일이다.뭐든지 기초(펀더멘탈, fundamental) 가 탄탄해야 한다는데, 지금 한국 문화의 기초가 ‘모래 위에 지은 누각’ 인지 살펴봐야 할 때다.

글:강경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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