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를 준비중입니다”..고교 재학중인 송흥복의원의 오뚝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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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송흥복 의원(설악투데이)

고성군 의회 송흥복 부의장은 오늘도 출근했다. 예산심의도 마쳤고 연말이라  조금 휴식을 갖을 법한데  서류더미에 파묻혀 씨름하고 있다.
“회기 끝나고 이때가 바로 공부하는 시간이죠. 조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틈틈이 찾아오는 주민들과 대화도 해야 하고,.. 오늘도  8명이나 벌써 다녀갔네요.”

초선인 송의원은  벌써 5건의 조례를 발의해서  만들었다. 2018년  막  의회에 들어 온 겨울이었다.그는  관내 도로의  제설상황을  현장에서  꼼꼼하게 살펴서  문제제기를 했다.요지는 염화칼슘등  제설용 자재가  관리부실로 길에서 그냥 낭비되고 있다는 것.

행정에서 발칵 뒤집혔고 담당과장은  읍소했다.그는 질책을 넘어 대안으로 해법을 찾았는데 그게  제설창고 건설이고  지금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그가 발의한 4차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한 농민들의  광장인 농민센터도 곧 착공한다.

“ 저는 학벌이 없습니다. 지금 고등학교 다니고 있죠. 그러나  군청 재직시 어깨너머로 군 살림 살이 돌아가는 것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그는 군청에서 기능직으로 들어와 25년을 근무했다. 고인이 된 황종국 군수를  장기간 모셨다. 군수가 이동중 차안에서 실.과장들이 보고하는 것을 들었고  그걸 나중에 메모도 해 놨다.이렇게 정책이 만들어지고 현안이 진행되는 것이구나…그때 눈썰미로 익힌 것을 의회에 들어와서 잘 활용하고 있다.

현장을 중시하는 그의 의정 활동이 빛을  발휘하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인생역정에서  비롯된 것이다.그는 밑바닥에서 시작했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실향민 아버지의 6남매중 맏이로 태어났다.산학리에서 끼니 떼우기도 급급했다.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다.그래도 그는  책을 늘 가까이 했다. 군에서 제대 후 강릉 관동대 직원을 뽑는 시험을 보러갔다.성적은 좋았으나  면접에서 밀렸다. 당시 그의 공식학력은 초등학교 졸업.그게 그의 가슴에 생채기를 주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버스 운전을  2년간 했다.그러다가  고성군에서 기능직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응시해서 합격해  현내면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이후 군청으로 옮겨와 정년을 마쳤다.그 사이  통신강의로 중학교를 마쳤고 지금은 고등학교 과정에 재학중이다.
“ 고교 졸업하면 방송통신대에 진학해서 전문성을  더 높일 계획입니다.알아야 할 게 너무 많죠. 배워야 따라가고 정책을  다루는 안목이 더 생기겠죠.”

째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공직생활을 하면 좀 주름이 펴는가 했더니 다른 고난이 닥쳤다.부인의 건강이 안 좋아졌다. 엊그제도  병원에 가서 체크하고 왔다.그걸 벌써 22년째 하고 있다.
부인의 거동이 불편해서 집안에서 밥하는 것부터 살림은  송의원의 몫이다. 거기다가 노모도 함께 모시고 있다. 노모 역시  지난해  넘어지는 바람에 거동이  쉽지 않아  그가  수발하고 있다.집안 살림에 군정 살림에  그의 24시는  정말 눈코뜰새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눈꼽의 내색도 않고 의정에 전념하고 있다.

“쌀 씻어 놓고  들어와서  버튼만 누르면 밥이 되니 얼마나 편해요.집안 살림하는 마음으로 군정을 보고 군민들과 소통하려고 합니다.제가 바닥에서 생활해 봐서 잘 압니다.그래서 사무실에 나와서 주민 한분이라도 더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걸 바탕으로 현장에도 가보고 하면서  의정을  살피고 있는 것이죠.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다음으로 나갈수 있죠”

워낙 부지런한 성품에  현내 거진에 그의 발품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을 쏟으면서  공부도 병행하면서 내공을 쌓는 모습이 든든하다. 그렇게 밥값을 하는 의원이 많아야  군민들의  삶도 좋아지고  군 살림도  야무져 지는 것이다.

송의원은 “대학 입학을 하는 날  크게 한번  파티 하자”며 웃는다.밑바닥에서 좌절하고 쓰러지면서  오뚜기처럼 일어난 바닥 경험으로 진취적인 의정을 살피는 그가 남달라 보이는 이유다.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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