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산 400주년 보광사 정신적 지주 김사임 할머니를 그리며…고성 백촌리 고택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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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보광사 개산 400주년을 맞는 해죠.물을 마시면 근원을 생각한다는 말처럼 보광사도 내력이 있습니다.지금 대웅전 마루바닥에서 보면 금강산 신선봉이 보이는데 그 자락 안양암에서 출발했습니다.그 기원의 살아 있는 증거가 1930년대 안양암 유실로 보광사로 옮겨져와 현재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지장보살상이죠.

400년의 성상에는 불심 깊은 신도들의 공덕이 컸습니다. 태풍이 할퀴고 가고 몇날이 지난 휴일 청간리 박철규 신도님 댁에 들렀다가 발걸음을 백촌리에 옮기게 되었습니다.대화중 김사임 할머니 이야기가 나와서 아차 하는 마음에 백촌리 기와집을 보고 싶었습니다.김사임 할머니는 살아 계셨으면 보광사 최장수 신도님이었을 겁니다. 당시만 해도 쉽지 않은 거리인 백촌에서 속초 영랑호반까지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지극한 정성을 다했습니다.

생전 한번 방문했던 기와집의 연화무늬 생각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김사임 할머니의 남편은 지역에서 명망있던 박주하 면장이었죠. 집의 규모를 볼 때 대갓집 면모를 갖추고 있고 집을 지으면서 불교식으로 하려고 애썼다는 할머니 말씀이 귓전을 멤돌았습니다.

백촌리 안쪽에 위치한 고택은 문이 잡겨 있었고 인기척도 없었습니다.비어 있은지 오래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위용마저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사립문을 들고 앞에 서니 먼저 연화무늬가 마치 보석 번쩍이듯 눈앞에 다가왔습니다.감시임 할머니의 고운 자태가 지나가는 듯 잠시 멈춰 서 기도했습니다.

낡고 부서진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의 모양과 형체가 드러났고 만만치 않은 고택임을 실감했습니다.건축학적 미학도 미학이지만 무엇보다도 마치 절집에 들어 온 듯 불교적 향내가 비록 폐허가 된 상태지만 진하게 전해 왔습니다.보기 드문 고택입니다.

중정 뜰에서 처마를 보고 기와지붕 위로 한참 더 올라가 있는 감나무를 보고 하늘을 쳐다보니 김사임 할머니가 말을 건네듯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보광사 절집의 또 다른 깊은 의미를 여기서 만나는 순간이고 그건 김사임 할머니의 깊은 신심임을 확인 하는 자리였습니다. 인걸은 간데없고 집만 남은 집 구석 구석은 안타까움을 전해주었지만 그나마 보광사 400년의 기왓장을 수북하게 올려주신 할머니의 영원한 향기를 접할 수 있는 것 같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세속에서 표현하는 그리움이란 게 이런 걸까요?

보광사의 정신적 지주고 현대사의 산 증인이셨던 김사임 할머니의 기록과 증언들은 모으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 흔적을 찾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보광사 개산 400주년 사적비를 세우는 과정에서 김사임 할머니를 반드시 기억하고 추념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며 집안을 좀더 둘러 보았습니다.

인연의 길이가 길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김사임 할머니는 참다운 불심을 일깨워주면서 저를 견책했는데 떠나고 없는 빈자리에서 아쉬움을 달래고 붙잡을 수 없는 흔적을 잡으려는 마음의 가닥이 참으로 산란했습니다.돌아서는 길 하늘이  잔뜩 흐려졌습니다.김사임 할머니 극락왕생하소서!

회고:석문 스님(영랑호 보광사 회주)

정리:류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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