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학정과 성황산, 아픔의 흑역사가 배어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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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눈 덮인 천학정

✍✍✍ 편집위원 김호의 세상비평 ✍✍✍

고성 교암리 성황산 자락의 천학정은 1931년 한치용·최순문·김성운 등 마을 유지들이 헌금을 모아 세운 정자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소유였던 성황산을 마을이 재환수한 뒤, ‘우리 땅’의 상징으로 건립됐지만, 지금은 사유지화된 땅 위에 고립된 유산이 됐다. 조선 왕실의 산이었던 이곳은 일제에 강탈당했고, 해방 후 마을 공동체가 되찾았으나, 최근 마을 ‘교암송계’가 2018년 천학정 주변 부지를 개인에게 매각하면서 개발의 먹잇감이 됐다.

천학정은 학알 모양의 동산과 1,500년 수령 소나무 아래 자리했으나, 성황산 일대가 개발계획지로 지정되며 훼손 위기에 직면했다. 정자 주변의 기암괴석과 해송림은 민간 개발업자의 눈앞에 놓인 채, 마을의 자발적 보존 노력은 사유지라는 법적 장벽에 가로막힌다.

천학정 보존회는 “조선 왕실의 산이 일제·개인·자본의 손을 거치며 상처받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하지만, 교암송계가 저지른 일탈행위도 뼈아픈 현실로 다가온다. 100년 전 선조들이 일제의 칼날 속에서도 지켜낸 정신이, 오늘날 개발 이익 앞에 무너지는 아이러니가 서린 현장이다.

이제 천학정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식민지 아픔과 공동체 해체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증언자’다. 성황산의 흙 속엔 조선 왕실의 자존심, 일제의 강탈, 현대적 탐욕이 층층이 쌓여 있다. 주민들은 “땅을 공공으로 돌려달라”는 외침 대신 묵묵히 역사 기록을 모으지만, 그 침묵 속에선 유산을 잃은 공동체의 절규가 들린다.

해안 절벽 위에 홀로 선 정자의 모습이, 마치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 간 주민들의 혼을 닮았다. 천학정의 기와지붕 너머로 보이는 동해의 수평선은, 과거와 현재의 상처를 삼키려는 파도처럼 이곳을 에워싼다.

이 천학정을 둘러싸고, 고성 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다름 아닌 사유재산과 공익성의 균형 문제가 그것이다. 헌법상 사유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이나, 일면 공공복리(공익)를 위해 제한할 수 있다. 단, 이 제한은 합리적이고 최소한이어야 하고, 정당한 보상이 수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나 토지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을 때, 그 소유자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면, 고성군은 적절한 지원이나 보상을 제공해 공익과 사익의 충돌 지점에서 균형점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일방의 강요는 분쟁만 유발할 뿐 문화재 보존이나 사유재산 이용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만약, 문화재 보존 때문에 토지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경우에는, 대체부지(군유지) 제공도 검토해 볼 만하다. 일본, 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는 문화재 보존구역 설정 시 이런 보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굳이 국가의 제도 정비를 기다릴 필요 없이 고성군이 주도적으로 협의를 통해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교암송계가 매각한 땅을 세금으로 되사거나 보상해야 하는 문제, 이를 어떻게 고성군민에게 이해시킬지도 중대한 문제가 될 것이다.

(편집위원 김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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