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21세기 초, 대한민국에 나라의 권력과 관심이 한 부부에게 모였으니, 그 이름은 윤석열과 김건희라 하였다. 그들은 2022년 5월 10일 취임한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과 그 부인이다.
경자년(1960)생 윤석열과 임자년(1972)생 김건희는 2020년대 초반 나라의 권력 정점에 섰던 부부이다. 윤석열은 서울대 법학과 출신으로 몇 번의 재수 끝에 신미년(1991)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에 들었고, 김건희는 사생활과 경력 관련 여러 논란이 제기되었으나 문화와 전시를 기획하는 코바나컨텐츠의 수장으로 있었다. 임진년(2012) 두 사람이 부부 가약을 맺었으니, 이때만 해도 한 사람은 서초동의 서슬 퍼런 칼날로, 한 사람은 명달(明達)한 화랑의 주인으로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후의 영욕은 열국지마저도 드문 일이어서 민간사관 이하가 사초에 남기노라.
제1장: 강골(强骨)의 등장과 기대
윤석열은 검찰에 재직하며 권세가들의 비리를 파헤쳐 이름을 떨쳤다. 병신년(2016) 국정농단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아 전대 임금 박근혜와 그 측근인 최순실(최서원) 등을 추궁하여 감옥에 보냈고, 이어 이명박 전 군주의 탐욕까지 다스리니 세상이 그를 ‘강골 검사’라 일컬었다. 기해년(2019) 들어 마침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직에 올랐다.
이 때 시대는 문재인 조정이 적폐 청산을 한답시고 좋은 세월 다 허비하고 코로나 대응과 부동산 정책 실패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특히 ‘공정(公正)’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안팎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함이 극에 달했다. 특히 조정의 실세였던 형조판서인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교수 출신인 조국(曺國)의 가솔들이 보여준 위조 등의 허위와 범법 행태는 나라의 선비들과 청년들의 가슴에 깊은 대못을 박았다.
그럼에도 새로운 적폐로 싹트기 시작한 진영주의로 물든 철면피 교수들 일부와 좌파 지식인이 대거 조국을 옹호하니 번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백성들이 이를 가리켜 ‘내로남불’이라 부르며 통탄해 마지않았다.
이때 권력에 굴하지 않고 앞장서 조국 건을 응징코자 하는 윤석열을 보며 장차 나라가 옳은 방향으로 가는 데에 필요한 지도자로 눈여겨 보기 시작하였다. 윤석열 자신 또한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는 강골(强骨)”이라는 이미지를 은근 강화하며 대망(大望)을 품기에 이르렀다. 마땅한 대권 후보가 부재했던 야당이 대안으로 윤석열을 선택했고 그는 일약 대권 주자가 되었다.
반면, 상대 대권 후보였던 이재명(李在明)은 경기 관찰사 시절 대장동(大莊洞)의 땅을 갈아엎어 민간업자들에게 막대한 이득을 몰아주었다는 ‘대장동 의혹’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니 그 민심이 위태로웠다. 그뿐만 아니라 가솔들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과 형수에게 쏟아낸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의 기록이 저잣거리에 퍼지고 있었다. 일부 바른 선비들은 그 도덕적 결함을 꾸짖고 상당수 유권자 사이에서 도덕성 논란이 제기되었다. 비로소 ‘정권교체’를 부르짖는 여론이 팔도(八道)에 일어났다.
마침내 선거 날, 백성들은 비록 윤석열이 정치를 알지 못하는 ‘신인’일지라도, 무너진 법치를 바로 세우고 상대 후보의 거대한 비리 의혹과 전임 조정의 가식적인 행태를 심판하고자 그를 선택하였다.
이하 시인은 당시에 한마디로 평했다. “보수 윤석열이 유능하거나 좋아서가 아니라, 좌파의 행태가 꼴보기 싫어서 선택했다”고. 그도 그럴 것이 0.73%라는 지극히 미세한 차이는 하늘이 내린 경고이자, 동시에 무너진 공정을 상식으로 돌려놓으라는 백성들의 절박한 호소의 차이였다.
사관(史官)은 논한다. 권력은 백성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세워지나, 그 마음은 유리그릇과 같아 한 번 금이 가면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다. 윤석열의 등극은 곧 전임자의 오만과 상대자의 불의에 대한 반작용(反作用)이었으니, 이 어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다음회 계속: 제2장 용산 이거(移居)와 여야의 극한 대립)
글 : 이하(李夏) 이만식/경동대 부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