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통계부터 살펴보자,서울의 2.4배에 이르는 강원도 평창에서 24시간 응급의료기관은 단 한 곳뿐이다. 전국 일차의료취약지는 547곳에 달하고, 공중보건의는 2017년 2116명에서 올해 593명으로 급감했다. 내년이면 전국 보건지소의 86.9%가 의사 없이 운영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농어촌 의료 공백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새로운 의사가 농어촌으로 대거 올 것이라는 기대도 현실성이 낮다. 지역의사제, 시니어의사제,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모두 필요하지만, 당장 오늘 아픈 주민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 정책만으로는 농어촌 의료를 지킬 수 없다.
이럴수록 시선을 돌려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전국 1800여 개 보건진료소다.
보건진료소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지와 농산어촌에서 주민의 건강을 지켜온 우리나라만의 살아 있는 공공의료 시스템이다. 도시에서는 잘 체감하지 못하지만, 농어촌 주민들에게 보건진료소는 가장 가까운 의료기관이자 가장 먼저 찾는 건강상담 창구다.
무엇보다 강점은 접근성이다.
멀리 있는 종합병원보다, 언제든 걸어서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낯선 의사보다 이름을 알고 안부를 묻는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이 있는 곳이다. 주민의 병력과 생활습관, 가족 사정까지 이해하는 지역 밀착형 건강관리의 거점이다.
이보다 현실적인 기반시설은 없다.
그런데 정작 정책은 이 소중한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농어촌 의료대책은 여전히 ‘의사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의사는 필요하다. 그러나 의사가 오지 않는 현실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정책은 시작해야 한다.
답은 이미 현장에 있다.
보건진료소를 농어촌 통합돌봄의 핵심 거점으로 키워야 한다.
현재의 1인 체제를 보완하고, 간호인력과 돌봄인력, 방문건강관리 인력을 연계해 만성질환 관리, 건강 모니터링, 방문돌봄, 재택의료 연계, 응급상황 초기 대응까지 수행하는 지역 건강플랫폼으로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보건진료소의 역할은 40여 년 전 제도에 머물러 있는데, 농어촌의 의료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초고령사회에 맞게 업무 범위를 현실화하고, 인력과 장비, 법적 권한을 보강해야 한다. 보건진료소를 단순한 ‘진료시설’이 아니라 의료와 돌봄을 연결하는 지역 건강관리 거점,돌봄의 핵심시설로 재설계해야 한다.
행정도 달라져야 한다.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 재택의료, 장기요양, 통합돌봄이 각각 따로 움직이는 구조로는 의료 공백을 메울 수 없다. 하나의 체계 안에서 연계되고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현장은 하나인데 행정은 여러 부처와 여러 제도로 쪼개져 있으니, 주민들은 필요한 서비스를 제때 받지 못한다.
농어촌 의료의 해법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누구도 오지 않는 곳에서, 누구도 쉽게 나서지 않는 의료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전국 곳곳에서 묵묵히 주민 곁을 지켜온 보건진료소가 바로 그 답이다.
이제는 없는 의사를 기다릴 것인가, 있는 보건진료소를 살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농어촌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정책 발표가 아니다. 아플 때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곳,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평생 건강을 함께 지켜주는 의료체계다.
그 출발점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반세기 농어촌을 지켜온 보건진료소를 국가가 제대로 키우고 활용하는 데 있다.
류인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