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호 보광사 대웅전 뒷길에서 바라다 보이는 금강산 신선봉, 긴 겨울 흰눈을 입고 있던 봉우리에도 봄기운이 무르익는 모습이 아스라이 다가온다.1만2천봉의 첫봉 신선봉 그 영산 언저리에 있었던 안양암 작은 암자터에서 사랑 이야기가 출발하고 있다. 사후 남편을 위해 부처상을 모신 한씨 부인의 러브스토리가 그것이다.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목조지장보살상은 지금 보광사에 와 있다.나업과 한씨 부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목조지장보살좌상의 복장물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금강산 안양암(영랑호 보광사 전신)에 죽은 남편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목조지장 보살상을 모시고 다시 만나자했던 정경부인 한씨의 순애보는 당대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평가받고 있다.평범을 뛰어 넘는 동.서를 통틀어도 보기 드문 사랑방정식이었고 지극하고도 애틋함은 400여년이 지났음에도 심금을 울리고 있다.
내관을 사랑한 여인.그것만으로도 특별하고 비범하다.자식을 나을 수 없기에 양자를 들였던 당시 풍습으로 봐도 이례적인 모습인데 사랑이 물화되고 시든 잎새처럼 가벼워진 시대, 울림의 깊이가 클 수 밖에 없다.
한씨부인의 남편 나업은 내관이었다.승록대부라는 높은 관직으로 궁중에서 임금을 보좌하는 근무를 했는데 사신으로 중국 출장도 잦은 것으로 알려졌고 당시 영의정 최명길도 나업에게 공손하게 예를 다하고 외교를 물었다고 한다.실록에는 중국을 6회 다녀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편의 긴 출타 만큼 한씨 부인의 걱정이 컸을 터이고 기다림은 목마름이었을 것이다.남편이 중국 출장을 몇달이고 가 있을 때 그녀는 긴긴밤을 호롱불 아래서 글을 읽거나 소일을 하면서 보냈다.이러한 특수한 상황에서도 그의 사랑은 변함 없었고 그 정점은 남편 사후에 목조지장보살상을 조성해 모셨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당대 최고 조각을 하는 스님에게 보살상을 맡겼다는데서 부인의 고결한 사랑이 더해진다.
남편이 떠나고 20여년뒤 1675년 한씨부인도 세상을 떴고 일영계곡 골짜기에 합장됐다.그렇게 다시 만난 그들은 지금 산세가 순한 산자락에서 새들과 함께 연두색 봄을 맞고 있다. 아미타 세상이 따로 없다.오래 시간 그 흔적을 찾던 보광사가 이들 부부의 묘소를 찾은 것 역시 인연법이었고 그 숭고한 사랑을 기리기 위해 2021년 예술가들이 함께한 가운데 첫 추모제도 올리고 관리해 오고 있다.
묘소에서 느끼는 바는 오랜 세월로 많이 바랬지만 두 사람의 군더더기 없는 사랑의 숨결이 들리는듯 참으로 정겨운 모습이다.남편을 먼저 보내고 애끓는 마음으로 단아한 목조상을 금강산 자락에 모신 그 극진함을 뭐라 해야 하는가?극락왕생의 나라에 사랑의 향기가 가득 채워지는, 지상에서 못다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천상의 로맨스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내관의 아내로 인내하는 삶을 살면서 불심을 삶의 여울에 가득 채우며 궁극에도 마치 남편을 닮은 듯한 목조지장보살상을 모시면서 새로운 차원의 사랑으로 승화시킨 정경부인 한씨의 사랑이야기는 그래서 지금도 가슴 절절한 사랑가이자 동서고금 그 어디에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인 사랑이었다.보광사는 정경부인 한씨 이야기를 더 다채로운 장르로 대중과 함께 하면서 ‘불후의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준비중이다.
신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