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위원 김호의 세상비평 ✍✍✍
5년 전 대법원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실형을 확정했다. 당시 수행비서였던 김00 씨를 상대로 반복적인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혐의였다. 재판부는 “권력에 의한 위력이 성관계의 자유로운 동의를 무력화시켰다”고 판단했다. 성폭력 판단 기준에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새로운 잣대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그 판결 이후, 성폭력 사건은 단순히 ‘합의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거부할 수 있었느냐’가 쟁점이 됐다. 상대방이 권력자일 때, 침묵이나 수동적 행동을 동의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남았다.
최근 김진하 양양군수 사건이 불거졌다. 김 군수는 ‘민원인으로 만난 여성과 자연스럽게 연인관계로 발전했고, 성관계도 그 과정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피해 여성은 ‘연인이 아니었고, 군수의 지위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겉보기엔 두 사람의 말이 엇갈리는 단순한 진술 싸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관계의 맥락’이다. 상대가 군수였다면, 일반 민원인이 그의 요구를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었겠는가. 권력은 보이지 않는 위력이다. 대법원도 안희정 판결에서 이를 인정했다. 직속상관이나 정치적 상급자의 요구 앞에 피해자가 느끼는 압박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법부는 안 전 지사 사건을 통해 “피해자 진술을 판단할 때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피해자가 얼마나 ‘피해자답게’ 행동했느냐보다, 그가 처한 상황이 거부를 가능하게 했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군수 사건은 그 기준이 여전히 유효한지, 우리 사회가 이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되묻는다. 사건의 진위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중요한 건 ‘거절할 수 없는 관계에서의 합의’는 진정한 합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안희정 판결은 단지 한 정치인의 실형 선고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 권력형 성범죄의 본질, 양성평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전례였다. 김 군수 사건은 그 기준이 지금도 살아 있는지를 시험하는 새로운 사건이 되고 있다.
(편집위원 김호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