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호반의 400년 고찰 보광사, 시내에서 가깝지만 경내 들어서면 깊은 산중에 온듯한 평화로움이 가득하다.
2019년 4월4일 고성산불이 나기 전 우거진 송림이 절집을 감싸고 있었을 당시는 더욱더 그랬었다.세상 만사 음양의 이치가 있다고 참으로 아름다운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사라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에 새 풍경이 들어 앉았다. 관음바위를 비롯해 보광사를 구성하는 자연경관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예상치 못한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보광사 스님은 “ 악몽 같은 날이었다. 그날 소방차를 경내에 좀더 일찍 진입시켰으면 송림을 좀더 보호할수 있었는데…”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불타 소나무가 잘려나가고 민둥산이 된 대웅전 옆 언덕에 홍매를 한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제법 키가 큰 홍매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꽃을 피웠다. 절집에서 가장 먼저 피는 꼿나무다. 새색시처럼 단아하고 하늘 방향으로 고개들고 있는 홍매의 모습에서 산불으로 검게 그을린 절집의 상처를 동여매주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홍매를 심은 자리가 그러고 보니 명당이다.400년 하고 1년째 맞는 보광사는 원래 금강산 신선봉에서 출발했다. 1930년대 홍수로 절집이 다 쓸려 나가면서 이곳 영랑호반으로 옮겨오게 되었는데 영랑호반에 자리잡은 터가 원터인 신선봉과 직선으로 연결돼 있다. 보광사 절터를 잡은 스님들의 기막힌 택지다.신선봉의 기운이 온전하게 바로 전이되는 듯하고 실제 보광사는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정평이 나 있다.
홍매가 서 있는 자리는 신선봉과 직통으로 연결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홍매 옆에서 보니 눈덮인 신선봉이 매화꽃 너머로 미끈한 자태로 서 있다.기가 막힌 프레임이다.4월 설산을 홍매와 함께 보는것은 행운이자 진짜 시절인연이다.이런 마주함도 흔치 않다.신선봉이 부르는 듯 빨려 들어가는 듯 홀린다.가히 영산의 아우라다. 금강산 제1봉의 명성 그대로다.그러고 보니 보광사를 금강산 보광사라고 불러야 한다.산불의 상처는 아프지만 이런 풍경을 선사하는 것을 보니 인연법이란 따로 있구나 무릎을 친다.
스님이 휴대폰으로 잡은 한 컷의 사진은 또 하나의 보광사의 역사적 장면을 담은 것이자 신선봉을 다시금 기억하고 연결하는 케이블선이다.사진이 기도처럼 다가온다. 2019년 4월 4일 저녁 모질고 세차던 바람속에 화염에 휩싸인 도량을 무너져 내리는 마음으로 바라보던 그 마음을 홍매의 자태가 달래주는 봄이다.흘러 간 건 흘러간대로 오는 것도 인연대로….
스님은 지나가는 말처럼 되뇌인다.“이거도 인연이지요”
글: 김형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