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산 400주년 보광사 신도회 총회장 이상래…“원래의 자리로 오니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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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의 톤이 높지 않다.화내는 일이 거의 없다. 바른 생활의 교과서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신망이 두텁다.

속초 청학동에서 째지게 가난한 시절을 보내고 학교를 졸업한뒤 속초시청을 들어가 평생 공직의 길을 걸었다. 마지막 보직이 기획감사실장. 그는 변함 없는 원칙맨으로 통한다. 잡음 한자 없는 그의 공직 40년 라벨이 보증한다.한때 정치에 뜻을 두고 맨바닥을 뛰기도 했지만 이제는 훌훌 다 털었다. 얼마전에는 문화재 제자리 찾기 소임으로 뉴욕을 다녀왔다. 그가 속초시 문화재 환수에 세운 공은 크다.

그는 요즘 맘이 편하다고 한다. 그의 발길은 오랫동안 동행했던 불교의 뜨락으로 다시 모아지고 있다. 학생시절부터 불교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신심의 깊이가 남달랐던 그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개산 400주년 영랑호 보광사 신도회 총회장을 맡았다.만추의 어느날 회장직을 수락하면서 그는 조용히 신뢰기반을 두텁게 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별 소리 소문 없지만 그의 향기가 살며시 퍼지고 있다. 보광사 절집도 훈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보광사 신도회는 연우회,칠성회,하심회등 여러 신행모임이 있다. 이들과 소통하고 눈을 맞추는 일 역시 나직하게 해 나가는 그의 행보가 그래서 믿음이 간다.한참 뜸을 들이다가 한마디 내뱉지만 그의 말길에는 출렁거리는 요동이 없다.

보광사는 개산 400주년을 맞아 새로운 비전으로 비상중이다. 여러 가지 사업도 수행하지만 흩어졌던 신심이 한그릇으로 통합되면서 큰 여울이 되는 발원이 향를 피우는 중이다. 그 중심에 이상래 총회장이 서 있다는 것은 듬직한 일이고 다들 반기고 있다.

그의 부인이 어느날 절집에 살며시 왔다 갔다는 소식을 아침이면 듣는다는 스님들은 그냥 웃으신다.부부는 닮는다고 발걸음도 닮아가나 보다.

사적비를 세우고 구국충정 항일독립운동 스님들의 위패를 모시는등 역사적 전기의 등불을 밝히는 보광사는 속초의 정신사적 구심점으로 부상중이고 그 이면에 이상래 총회장의 소리 없는 발걸음이 뒷받침 하고 있다.

류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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