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스산한 절집 그리고 소리 공양(供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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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차다.그냥 그런가 싶더니 찬바람이 깊이 파고든다. 절집 마당은 더 휑하다. 잔디도 누렇게 누워버렸고 풍경들은 저마다 시든 모습니다.키작은 단풍나무의 작은 단풍잎이 흩날려 잔디밭에 떨어진다.

그 사막같은 정경의 한가운데 서니 소리가 붙잡는다.처마에 걸린 풍경소리가 청아하게 귀전에 다가온다. 저 소리는 무슨 것인가.아득히 잊고 있던 지층의 마른 땅을 열게 하는 듯 말이다.

소리를 다가가 들으려고 대웅전으로 향하는데 풍경소리에 묻혔던 또 다른 소리가 귓전을 넘어 마음의 건반을 두들긴다. 예불 소리다. 옆문으로 살며시 훔쳐보니 스님이 찬마루에 무릎을 꿇고 있다. 목탁소리와 육성이 번갈아 가면서 이어진다.

이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아니다.간구하는 기도다.예불소리를 붙잡고 대웅전을 돈다.금강경의 깊은 골짜기에서 우러 나오는 간결한 소리가 걸음위에 겹쳐진다. 몇바퀴를 돌아도 이어진다.그 소리에 얹혀 근심의 잔가지를 떠내 보낸다.

지웅스님이시다.경북 예천 소백산 토굴에서 기도정진중 개산 400주년 보광사에 인연따라 오셔 날마다 정진중이다.하늘에서 막 도착한 소리같은 저 명료하고 맑은 소리는 그대로 보시요 공양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소리공양이란 이런 것이다. 풍경소리도 그렇고 예불하는 스님의 소리도, 목탁소리도 다 그렇게 오감을 흔들어 댄다.밥으로만 배부르지 않고 소리도 양식이다.밥이 전부가 아니라고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소리의 갈피에 녹아 있는 평온과 희망은  마음을 데피는 따스한 양식이다.

그 소리에 취해 바람소리의 차가움을 잊었다. 시내에서 멀지 않지만 깊은 산사에 도착한 느낌같은 고요만이 가득한 절집이 온통 소리의 축제다.바람을 이겨내는, 풍파를 이겨내는 소리의 열반, 이 또한 풍랑이 몰아치는 세태에 위안 아니겠는가.

기도의 달인 지웅 스님의 반야심경 독송에서 관자재보살 구절이 들려오는 무렵 나는 대웅전을 다 돌고 바위 앞에 섰다. 천년 만년 서 있는 대웅전 뒤편 바위는 소리를 다 들었다는 양 침묵이다.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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