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밤 바다에서…”세월을 낚고 있습니다”

0
258

살이 타듯 푹푹 쪘다.밤 해변으로 갔다.아주 오래전 해떨어진 뒤 해변에서 더위 식히는 게 지역주민들의 피서법 중 하나였다.담요로 천막을 치고 찰랑이는 밤바다 파도소리에 수평선 너머 오징어배도 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정겹던 풍경이 소환되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오랜만에 밤 바다에 나가는 거다.청간정 군인콘도 우측 해변, 밤 해변은 의외로 조용했다. 간이천막도 접혔고 한 가족이 불꽃을 터트리며 밤하늘을 빛냈다.반바지 차림으로 옷을 갈아 입고 맨발로 모래를 밟았다. 간질거리면서 사각거리는 모래알 소리가 촉촉하다.시원하다. 얼마만에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가.태초에 바닷물에 몸을 적시는 기분같다.조금 외진 곳을 찾아 용촌 해변쪽으로 이동했다. 가로등 불빛에 긴 해변이 음영으로 드러난 모습이 근사하다.

내가 가는 목적지는 마음에 있다. 용촌 갯바위, 금강산 신선봉 물이 내려와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다.진한 향이 일품인 해초 진둥아리를 따러 다니던 곳이다.반세기 세월이 흘렀다. 명환이 할아버지 따라서 여름날 이곳에 오면 낫으로 한자루씩 캐서 갔고 한철 넉넉한 반찬거리였다.해초내음이 밀려오는 듯 바람결이 달콤하다. 그런데 그 바위위에 낚싯대가 드리워져 있다. 한 사내가 낚싯대를 세워 놓고 의자에 기대어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인사를 건네자 그는 “세월을 낚고 있습니다”라고 응수하기에 대화가 이어졌다.

남양주에서 밤 낚시 하러 왔다고 한다, 혼자 종종 전국으로 물 좋다는데 찾아서 즐기는데 오늘은 해질녁 도착 이곳에 낚싯대를 드리웠다고… 전남 신안이 고향이어서 바다와 친숙하다고.47살이란다. 아직 미혼. 애인이 있는데 50 정도에 결혼할 생각이라고, 그러나 애는 자신이 없단다. 그는 많이 듣던 드라마 대사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 사이 낚시대가 한번 빨간색 신호가 오다가 멈춘다. 아무래도 미끼를 뜯긴 것 같다고 낚싯대를 거둬 들인다. 장갑을 끼고 미끼를 다시 채운다. 그리고 낚싯대를 뒤로 젖혀 던진다. 밤하늘을 날아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는 듯하다. 70미터 던진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기 잡는 것도 즐겁지만 낚싯대 던지는 맛이 좋다.높이 쳐들어 날리는 순간  스트레스 확 날아가죠”

하이네켄을 한캔 건네기에 바닷물에 적셔 한모금 했다.청량했다. 그는 의자 자랑을 했다. 비행기 좌석보다 더 편하다고.낚시 의자도 진화하는구나 인체공학적으로.취미를 위해 투자하는 게 취향의 미덕아니겠는가.각자도생의 세상에.

낚싯대 끄트머리 저쪽으로 밤바다가 훤하다. 오징어배가 밝힌 불이다. 그 찬란한 만큼 풍어가 있으면 좋겠다. 그 많던 오징어 배는 다 어디 갔을까.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단지 시간에 대한 복고적 반추만이 아닐 것이다. 풍요의 세상에 바다는 빈약해졌다.모래도 쓸려 나가고 고기도 안잡히고.이제 바다에는 남는 게 뭐가 있는가. 유난히 잔잔한 바다.유례없는 폭염에 바다도 숨죽이고 있는 걸까. 호수처럼 고요함에 우리들 말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저만치 숭어가 뛰는 듯 했다.

밤11시가 돼서야 자리를 떴다.적막하다.여전히 찐다. 경사진 백사장이라 조심 조심 걷는다.뒤돌아 보니 그의 낚싯대는 쌍발 대포처럼 바다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의 낚싯대에 감성돔 큰 놈 한 마리 걸렸으면 좋겠다.

신창섭

댓글 작성하기!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