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신은 늘 한발 앞서가는 작가다. 회화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이제 누구도 쉽게 발을 디디지 않은 미답의 세계로 향하고 있다. 평면 회화를 넘어 공간을 품고, 전통 재료를 넘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그는 자신만의 ‘신세계 교향곡’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를 단순한 화가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오히려 ‘한지 아티스트’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우리는 흔히 한지를 이용한 작업이라 하면 공예나 전통적인 조형을 떠올린다. 그러나 박석신의 한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존재한다. 그의 한지는 작품을 꾸미는 재료가 아니라 작품의 구조가 되고, 화면 자체가 된다. 그 위에서 그의 철학적 사유와 무한한 상상력이 거대한 바다처럼 펼쳐진다.
이번 제주 초대전에서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은 거대한 소나무 연작이다. 수미터에 이르는 화면은 마치 거대한 깃발처럼 천장에서 펄럭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그림이 아니다. 수백 개의 작은 사각형 조각들이 줄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화면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는 웅장한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각각의 조각이 독립된 작품이다. 마치 수백 장의 엽서가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듯한 구성이다.
그림은 바람을 만나면 흔들리고, 접히고, 펼쳐진다. 고정된 캔버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움직임이다.
박석신은 웃으며 말한다.”이렇게 작업하니까 먼 곳에 전시 갈 때는 접어서 가져가면 됩니다.”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그의 작업 철학이 담겨 있다. 그림은 더 이상 벽에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이동하고 변화하며 공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작업 과정 역시 독창적이다. 먼저 하나의 거대한 화면에 소나무를 완성한다. 이후 그것을 엽서 크기의 작은 조각들로 분할한 뒤, 각각을 다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 그리고 다시 줄로 연결하여 거대한 화면으로 재탄생시킨다.
분해와 재구성.
해체와 융합.
그 두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곶자왈 숲을 표현한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격자가 겹겹이 이어지며 숲을 이루고, 그 안에서 나무와 덩굴은 서로 기대고 얽히며 살아간다. 화면은 더 이상 정지된 풍경이 아니라 생명이 숨 쉬는 숲이 된다.
이는 풍경을 고정된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존 회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화면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며 공간과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는 살아 숨 쉬는 캔버스를 창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박석신의 작업은 회화와 설치미술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한지가 가진 전통적이고 고정된 이미지를 격자와 줄이라는 구조를 통해 과감하게 해체하면서도, 다시 하나의 거대한 화면으로 통합한다. 분해되지만 흩어지지 않고, 나뉘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그의 작품은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하나다.
이러한 조형 방식은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연결되고 공존하는 공동체의 철학을 은유한다. 각각의 작은 화면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큰 세계를 완성한다. 다양성과 조화가 함께 살아가는 대동세상의 비전이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스며든다.
박석신의 창의성은 결코 엉뚱한 발상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가장 익숙한 재료인 한지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전통을 해체하면서도 전통을 잃지 않고, 현대성을 추구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를 놓치지 않는다.
이처럼 한지를 회화와 설치, 공간예술로 확장한 작업은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다. 그래서 그를 ‘한지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번 제주 초대전에서 그의 한지 작품들이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품은 단순히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간 속을 거닐며 감상하게 만들고, 상상하게 만들며, 새로운 활용 가능성까지 떠올리게 한다. 회화와 설치, 디자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박석신은 지금 새로운 회화 문법을 쓰고 있다. 한지를 찢고, 연결하고, 흔들리게 하며 평면을 공간으로 확장한다. 그의 작업은 전통과 현대를 잇고, 회화와 설치를 연결하며, 예술과 삶을 하나로 묶는다.
이번 제주 초대전은 그가 왜 동시대 한국미술에서 가장 독창적인 한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자리였다. 그의 한지는 더 이상 종이가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캔버스이며, 철학을 품은 공간이고, 새로운 예술 장르의 가능성 그 자체다.
신창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