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려와 오늘 아침 갯배 근처에 나가서 바로 그린 것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4층 화실에 세워 둔 그림이 살아 움직인다.현실속에 잊혀진 과거의 그리움이 어른거린다.그림을 설명하는 김정호 화백의 표현이 시원시원하다. 그는 현장에서 바로 그린다.다시 와서 고치거나 덧칠하는 경우가 없이 현장의 관찰과 영감으로 단순명료하게 그려낸다.
이날 갯배 주변 풍경의 바다는 푸른 바다에 가을빛이 소복히 내려 앉은 듯한 항구의 조붓한 모습이 유려하게 표현됐다.아침 그림 작업에 반한 속초시민이 화실로 찾아와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김정호 화백, 40년 화력의 중견화가인 그는 매달 한차례 속초 중앙동 화실에 온다.화실 창으로 보는 바다 풍경은 속초를 압축한 듯하다. 조도와 등대가 보이고 갯배가 오가는 풍경이 정겹다. 이런 애잔함이 그의 화폭에 강한 붓끝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는 30여년전 청호도에 스캐치하러 왔다가 그곳에서 본 속초의 나직하고도 쓸쓸한 정경이 가슴을 후벼파 속초에 별도 화실을 마련해 설악산과 바다를 그리고 있다. 화실겸 전시장인 그의 방에는 많은 그림이 걸려 있다. 울산바위를 비롯해서 갯배, 달마봉, 장수대등…울산바위 대작에는 다른 작품에서 맛보기 힘든 바위의 기와 혼이 그대로 전해오는 듯하다.
계절과 무관하게 그의 그림에는 힘과 활력이 넘친다.미시령 가을의 단풍이 불탄는 모습에 하늘색이 붉은색으로 칠해진다.”저 색은 외국물감이 아니면 표현이 안되는 색감이죠. 색감속에 담긴 깊은 맛이 나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통이 크게 그린다. 물감을 아끼는 스타일이 아닌 표현이 원하는 방향에 그대로 질러 버리는 성격이다.그래서 유화가 갖는 질감이 적절한 농도속에 입체적으로 잘 드러난다.그의 그림 매력포인트다.장대함을 심플하게. 많은 것이 아닌 덜어내는데 집중하는 그러면서 의미와 통찰을 주는 자신의 그림을 그는 개념주의로 명명한다.
속초에 화실을 마련한지 7년,그는 속초에 오면 에너지와 기를 받는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도시에서 지친 몸을 끌고 속초에 와서는 오로지 산과 바다만 그린다고 한다.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응측된 표현속에 그러면서도 기운차고 장대하게 표현해 내는 그의 그림속에 풍경이 고등어처럼 살아 움직인다. 그의 붓끝이 터치하는 설악산과 동해바다는 새로운 해석과 여유를 준다. 그림 보는 맛이 짭쪼름 하다.이제 그를 설악산과 동해바다 화가로 불러도 좋을 듯 싶다.그는 아름다운 속초 풍경을 캔버스에서 새로운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기에 그렇다.
신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