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수채화’ 양신자 첫 개인전…30년 양양 산골생활서 품은 자유의 화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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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군 송어리, 읍내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골짜기가 꽤 깊은 곳이다. 오색 가는 큰길에서 터널을 지나 좌측으로 틀어 산길로 들어서 조금 올라가면 ‘숲속의 집’이 보인다. 양신자씨가 홀로 사는 집이다.양양에 온지 30여년, 나물 뜯으러 왔다가 인연이 돼서 첩첩산중같은 송어리 산등성이에서 살고 있다.

“ 친구들과 양양에 나물캐러 왔다가 이곳 계곡에 와서 그냥 반해버렸지요, 돌아간 뒤 혼자 배낭을 메고 와서 한달정도 있다가 이예 정착을 한거지요” 강릉이 원래 고향인 양씨는 서울에서 살면서 아이들을 키웠는데 50대에 과감하게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산을 택했다. 원체 시골을 좋아하고 특히 이런 산을 너무 좋아해서 평소 꿈을 꾸던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함께 내려와 살던 어머니가 떠나면서 그야말로 혼자 ‘독거노인’으로 살며 그가 붙잡은 것이 그림이다.

방안에 40여점의 그림이 가지런히 준비돼 있는데 16일 양양문화원에서 첫 전시회에 나갈 작품들이다. 그는 양양에 온뒤 문화원을 다니면서 김영덕 선생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원래 글씨를 좀 썼는데 예술적인 끼가 발동해서인지 그의 그림실력은 일취월장 향상됐다. 그림이 좋았다. 어느날에는 그림을 그리다가 밤을 꼴딱 새기도 할 정도로 푹 빠졌다.소소한 풍경들과 산 그림이 지금 양신자씨의 모습을 잔잔하게 웅변해 주는 듯하다.

올해 82세, 빗으로 곱게 빚어 넘긴 머릿결이 정갈하고 모습이 곱디 곱다. 아픈데 하나 없이 정정하다.맑고 투명하다.통상적인 질문을 하자 “심심할 겨를이 없다”고 한다.외롭고 고독하다는 것도 동의하지 않는다. “여기에 앉으면 산이 저렇게 서있는데 안개가 덮이고 눈이 내리는 날은 너무 환상적이지요”

그는 홀로 있는 자유를 맘껏 누리고 있다.다행이 누가 맡겨 놓고 간 강아지들과 고양이들이 친구가 돼 주고 있다. “밥 주면서 나도 걸고 운동하니 너무 좋지요.다 식구들이니까요”

강릉에서 운수업을 하는 부모덕에 모자람 없이 살았고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일본어에도 능하다.그게 장기간 산속 생활을 가능하게 한 원천이다.산골에서 다른 일 없이 그림을 그리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할수 있는 배경이다.그는 “ 모자람 없을 정도면 족하지요.산에 온 이유가 모든걸 덜어내려고 왔는데 더 가질 이유도 없지요”라고 말한다.

성당에도 가고 문화원에 가기도 하지만 그는 오두막같이 생긴 목조집의 탁자앞이 제일 좋다고 한다.양양판 소로우의 집이다.군더더기 없는 있는 그대로 소소한, 치장없는 그의 삶은 그의 맑은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단출한 삶이 징처럼 울린다.빈 것 같지만 가득찬 삶이다. 끄달리지 않고 스스로 택한 자유속에 양신자는 훨훨 나는 새 한 마리가 되었다.누구나 그렇게 꿈꾸지만 실행하기 어렵고 그냥 흉내내다가 마는 귀거래의 삶,앞산을 덮은 오후의 햇살이 그의 회색빛 머리칼에 눈부시게 머문다.그러고 보니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 집앞에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 전시회 팜플렛 인사말도 제가 짧게 썼어요. 너무 좋지요” 그렇게 소녀처럼 웃는 양신자 할머니의 어깨 너머로 솔잎이 푸르렀다.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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