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가르쳐 준 것…양양 동호리 해변에서

0
80

종일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파도마저 사납다. 국도변까지 굉음처럼 밀려오는 파도 소리는 마치 천지가 진동하는 듯하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몸도 편치 않고 마음도 산란했던 날, 나는 그 파도 소리에 이끌리듯 양양까지 차를 몰았다. 그리고 동호리 바다에 차를 세웠다.

언덕길을 내려서자 눈앞에 장대한 롱비치가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진 해변은 마치 흰 천을 온 세상에 펼쳐 놓은 듯했다. 산산이 부서진 파도가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파괴의 모습이지만, 그 파괴는 또 다른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형상으로 다가왔다.

흰 포말은 바다를 뒤덮고 백사장까지 하얗게 이어졌다. 저 장엄한 향연은 도대체 무엇일까. 모든 것이 부서져도 다시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암시일까.

바다의 교향곡은 천지창조의 원초적 울림과 갯비린내 가득한 생명의 기운을 실어 거침없이 오선지 위에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파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잔잔한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문득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가 떠올랐다. 수십 일 동안 빈손으로 바다를 헤매다가 마침내 청새치를 낚아 올렸던 노어부.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삶의 격언처럼 말이다.

하늘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바다는 으르렁거리며 성난 짐승처럼 포효했다. 그래도 태양은 다시 떠오를 것이다. 우리 삶 또한 그렇게 수레바퀴처럼 돌아간다.

동호리의 파도 소리는 그 평범하지만 소중한 진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남대천이 내려다보이는 새로 문을 연 카페에 들러 생강차 한 잔을 마셨다. 창밖으로 흐르는 강물과 조금 전까지의 성난 바다가 묘하게 겹쳐졌다.

바다는 사납다. 그러나 위대하다.그리고 바다는 삶이 흔들릴 때마다 조용히 말해주는 듯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글:변현주(고성군 간성읍 ‘꽃담길 카페’ 대표)

댓글 작성하기!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