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두루미 운영협의체 백종한 회장이 고성 진부령 미술관에 왔다. 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이창인 두루미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이창인씨는 두루미를 촬영하기 위해 철원에 갈때마다 백회장의 도움을 받고 백씨 집에서 기거하기도 하는 인연을 갖고 있다.우정의 방문을 한 셈이다.
백씨는 50년 반세기를 두루미와 함께 하고 있는 철원 두루미 산증인이다.오늘날 철원이 두루미 고향으로 자리매김 하고 비상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철원지역에서 군에서 제대한 백씨는 그곳에 정착하면서 1971년 두루미를 처음 만났다.논바닥에 있는 3마리를 관찰했다. 당시 어머니는 귀한 두루미를 보고 “영물이다. 조상처럼 모셔야한다”고 일러 주셨다고 한다. 그때만해도 두루미에 대한 인식과 보호 의식도 약했다. 그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는 1979년 주변 사람들과 두루미 보호협회를 조직했다. 예닐곱명이 참여했다.순수 민간 조직이었다.” 미친 놈이라고도 했죠. 이발소에 가면 머리 못 깎는다고 쫓겨나기도 했을 정도로 이단아 취급을 받았죠”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희귀 보호종 두루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반대하고 곱지 않던 백씨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다.백씨는 두루미 증인으로 여러나라를 방문했고 20여년전 미국의회에 가서 철원 두루미를 소개하기도 했다. 대단한 발걸음 이었다.
이제 두루미 협회는 150여명의 회원으로 커졌고 관청에서도 돕고 있다.철원군에서 매년 두루미 먹이 비용 7천만원을 대고 환경부도 두루미 관련 예산을 상당액 지원하고 있다.이 덕에 농가에서는 볏짚을 팔아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두루미를 빼고 철원을 설명할 수 없고 철원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주고 있다.
“두루미는 물에서 사는 새죠. 물이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두루미가 철원에서 월동하는 좋은 여건을 더 많이 만들어 주는 노력이 필요 한겁니다.”
백씨가 공들인 두루미는 철원군에 유무형의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매년 두루미 사진작가 4000여명이 몰려든다.콘텐츠 파워다. 두루미쌀 도 출시되었다. 지역농가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백씨는 “ 겨울철 농사짓고 난뒤 논을 두루미 서식지용으로 빌려주면 그 비용을 받습니다. 두루미가 더 많이 오기 위한 터전을 마련해 주는거죠”라고 말했다. 두루미가 머물면 오히려 논에 거름이 돼서 비료도 덜 쓰게 된다고 하니 일석이조 아닌가.”두루미가 밥 먹여주냐고 빈정대던 반대자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철원이 두루미 고장으로 거듭나면서 얻는 명성이다. 자연생태가 우월한 지역으로서 소문은 국내외서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백씨가 철원 dmz두루미 생태관광협의체 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유도 그러한 배경에서다.백씨의 집념과 노력으로 관광상품이 됐다. 실제 철원에 가면 2시간ᅟ짜리 두루미 관광코스가 있다.백회장은 “공장을 짓는거 보다 더 큰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생태가 곧 경제라는 걸 입증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앞으로 두루미 부화 및 사육에 이르는 시스템을 구축해서 일본 쿠시로 같은 명실상부 두루미 마을로 우뚝서게 하는게 그의 꿈이다.일본 쿠시로는 두루미 월동마을로 세계적 명성을 작고 있으면 두루미가 마을 브랜드가 된 곳이다.그의 이야기속에 시사하는 바는 자연생태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관광과 지역경제를 도모하는 점이다. 우수한 자연생태 자원을 관광이라는 명분아래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홍천 깡촌이었던 두촌리가 고향으로 군인생활을 하던 곳에 정착 논 농사를 지으면서 두루미와 인연을 맺은 백씨는 새로운 세상을 열었고 그의 꿈이 광활한 철원 벌판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 올해는 1만여 두루미가 철원땅을 찾고 있습니다.고마운 손님이죠. 아니 이젠 식구죠. 키가 훤칠한 두루미 모습은 정말 환상적입니다.사진작가들에게 겨울 두루미는 로망같은 존재죠. 정말 아름답고 귀합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두루미를 사랑하는 이창인 작가 사진보러 고성에 왔습니다.”
신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