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화가 박석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매주 TV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면서 대중적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인기 프로그램 ‘산’에서 내레이션을 맡아 전국의 명산을 직접 탐방하며 현장에서 스케치를 한다. 산을 오르며 화폭에 담아내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프로그램 속 ‘산’은 그의 예술 세계와도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실제 박석신 회화의 중심 주제 역시 ‘산’이다. 그는 전국의 수많은 산을 그려왔지만, 실경산수의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유화적인 색조 위에 굵고 힘 있는 선을 더해 산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때로는 화면 속에 글씨를 써 넣으며 서화적 감각까지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그는 회화에서 출발했지만 한지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전통 한지를 찢고 붙이고 겹치며 새로운 조형언어를 만들어낸다. 기존의 장르로 쉽게 규정하기 어려운 독창적인 작업이다.
그래서 그의 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산은 은유와 상징을 거쳐 철학이 된다. 그의 산에는 고난과 역경이 있고, 눈물과 땀이 스며 있으며, 삶의 설움이 켜켜이 배어 있다.
이번 제주문예회관 초대전에 출품된 ‘어머니’는 박석신이 평생 추구해 온 ‘산’의 철학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지를 바탕으로 여러 겹 쌓아 올린 화면은 에폭시를 입혀 깊은 윤기를 머금고 있다. 유리알처럼 맑으면서도 묵직한 질감 속에서 산의 형상이 떠오른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캔버스 자체를 산의 형태로 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산의 정상은 바로 어머니의 굽은 등과 맞닿아 있다.
평생 콩밭을 매고, 밭고랑에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혀 일했던 어머니의 세월. 삶의 무게를 견디며 굽어진 등이 어느새 하나의 산이 되었다. 박석신에게 산은 자연이 아니라 어머니다.
산이 어머니로 승화되는 이 장면은 그의 예술철학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낸다.
화면 곳곳에 붙여진 한지는 흙을 만지던 어머니의 손마디를 떠올리게 한다. 흙이 손에 켜켜이 달라붙듯 한지는 화면 위에 쌓여 어머니 삶의 흔적이 된다. 그는 땅을 일구던 어머니처럼 한지를 다듬고 이기며 또 하나의 산을 세워 올린다.
매주 방송을 통해 산을 오르며 우리에게 삶의 진리를 조용히 들려주는 그의 발걸음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있다.
그가 오르는 실제 산은 푸른 희망을 품고 있지만, 그의 그림 속 어머니의 산은 무겁고 어둡다. 그것은 고단했던 한 여성의 삶이자 이 땅 모든 어머니들의 주름이다.’어메 어메 우리 어메’ 애닮은 가락 바로 그 것이다.
제주 역시 주름 많은 섬이다. 화산이 만든 거친 지형과 역사 속 수많은 상처가 겹겹이 새겨진 땅이다. 시대의 아픔과 사람들의 한이 켜켜이 쌓인 제주의 풍경은 박석신의 ‘어머니의 산’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제주의 골짜기와 바닷가, 돌담과 현무암의 거친 질감을 어머니의 굽은 등과 포개어 보여준다. 결국 제주의 풍경은 어머니의 초상으로 읽힌다.
박석신의 산은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을 적시는 소나기이며 삶을 향한 치유의 노래다. 그는 매주 산 정상에 오르면서도 마음속에는 늘 어머니의 등을 품고 있다. 한지를 찢고 이기고 쌓아 올리는 작업은 땅을 일구던 어머니의 노동과 닮아 있다.
박석신은 한지라는 전통 재료를 현대적으로 확장하며 새로운 회화 문법을 구축하고 있다. 그의 산은 자연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어머니를 향한 헌사이며, 삶과 노동, 그리고 인간 존재를 성찰하는 철학의 풍경이다. 이번 제주 초대전은 그 깊은 울림을 가장 진하게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전시라 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