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숙회장(보광사 여신도회)은 올 6월 캐나다로 여행을 갈 계획이다. 그는 “ 캐나다 사는 장손이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나이가 더 먹기 전에 부부가 해외여행을 할겸 갔다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장회장은 아들 생각을 하면 지금도 코끝이 시큰해져 온다. 그해 유난히도 뉸이 많이 내리던 때 보광사로 기도하러 와서 대웅전에 기도하고 삼성각 오르는 길을 손으로 눈을 헤치면서 올라가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아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부단히도 정성을 드렸고, 그 공덕인지 아들은 중앙대를 졸업 미국 유학해서 MIT를 졸업하고 지금은 캐나다에서 학자생활을 하고 있다. 큰딸도 미국에 있다. 그렇게 1남 2녀가 다 잘 커서 자기들 몫을 하고 살고 있다.
하지만 여장부 같은 장영숙회장에게도 운명과 시련이 있었고 그 갈피에 사랑도 움텄다.평창 대화면에서 면장을 하던 아버지가 직을 그만두고 양구로 이사하면서 그야말로 운명의 여신을 만났다.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장씨는 경찰관이던 남편을 거기서 만났다. 끈질긴 구애에 넘어가 ’ 3년만 경찰 생활한다’는 약속을 하고 백년가약을 맺었다.그리고 속초 근무를 마지막으로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게 속초와 인연의 시작이다. 시댁은 불교 집안이었지만 장씨는 가톨릭을 믿었다. 시집와서 종교차이로 아무데도 다니지 않다가 시어머니의 청으로 작은 암자에 첫발을 디뎠고 그곳이 불타는 바람에 보광사와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 절집 분위기에 적응이 잘 안되었지만 독한 마음으로 108배를 하면서 심지를 굳혔고 자연스럽게 보광사의 신실한 식구가 돼 그 누구보다도 보광사를 사랑하게 되었다.그게 벌써 30년 가까이 된다.
“제가 요즘 기분이 좋은 게 밖에 나가면 보광사가 활력 있고 번창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장영숙 회장은 이런 풍문에 너무 기분이 좋다. 올해 나이 80, 아직도 청춘같은 기상으로 절집 안팎을 아우르면서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늘 큰 나무의 모습을 본다.살면서 정말로 어려웠던 시절을 겪으면서 오늘을 이룬 배경에 늘 든든한 불심이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 한달에 쌀 한가마가 모자를 정도로 식구가 많았어요. 속초에 와서 시댁 식구들을 다 불러서 함께 살았는데 정말 하루 종일 밥만 할 정도였으니요” 경찰을 그만둔 남편이 택시회사를 운영했지만 사고 뒷처리로 바람 잘날 없었고 그러다 공업사 운영에 참여했지만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날 부터 일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술술 풀리면서 자리를 잡았고 아이들도 반듯하게 성장해 주었다고 한다.애주가이자 사람 좋아 하는 남편은 이런 장영숙 회장을 묵묵히 응원하고 아낌 없이 후원하고 있다.
“부처님 인연이 있듯이 다 때가 있는 듯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헤쳐 나왔는가 아찔하지만 감사하고 고맙습니다.”라고 장회장은 술회한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준비차 절에 나오신 장영숙회장의 밝은 모습이 5월의 햇살처럼 편안하다.
류인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