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고 당선자들은 인수위 등을 꾸려 새롭게 출발했다. 이에 중앙정부도 지방정부의 새로운 출범에 맞춰 여러 정책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국정을 모색할 시점이기도 하다. 지방 선거에는 정부를 향해 “그래도 일은 잘한다”라는 평가가 다소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다시 살펴, 안이한 인식을 혹여 지속하여 착각할 여지가 있는지 주의가 필요하다.
현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정책이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실패한 정책을 성공으로 착각할 때다. 그간에는 주가 상승, 재정 지원 확대, 그리고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메시지가 일 잘한다는 주된 근거가 되어 왔다. 그러나 정부의 진정한 역량은 단기적 지표나 지지율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경제 구조의 안정성, 재정의 지속 가능성, 정치와 사법 시스템의 신뢰도에서 판가름 난다. 이 냉정한 기준 위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유능함’이라는 인식은 실제 현황 앞에서는 무너지고 만다.
문제는 일반 국민은 이런 지표나 통계에 익숙지 않고 접할 기회나 여력도 없다. 그러하니 정부와 여당이 어물쩍 넘어가기 일쑤다. 궁극에는 들통날 일이나 그때는 국민의 자각과 교정 여론이 늦어 결국 그 낭패를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은 뒤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슬로건은 현상을 이길 수 없다”
첫째. 부채와 인플레이션의 그림자이다.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00조 원을 넘어섰고, 다중채무자 상당수가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간 폐업자 수는 90만 명에 육박한다.
정부의 현금성 지원은 단기적 소비를 자극했지만, 물가 상승률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신선식품 물가는 15% 안팎, 외식 물가는 7% 이상 상승했다. 국가채무는 1,190조 원 수준으로 GDP 대비 50%에 근접했다. 이는 OECD 평균보다 낮지만, 재정 건전성의 경고등이 켜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결국 단기적 지원은 서민의 실질소득을 깎아먹는 역진적 부작용을 낳았고 여기도 저기도 제 돈인 것처럼 뿌리는 재정 풍토를 조성하고 말았다.
둘째. 산업 집중과 환율 불안이다.
수출 호조의 이면에는 산업 편중이 있다. 반도체 두 기업이 전체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며, 코스피 영업 이익의 80%를 독식한다.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이 약화되면 외부 충격에 대한 내성이 떨어진다. 환율은 1,500원 안팎으로 상승하고 있으니 이는 자본 신뢰의 약화를 의미한다.
부동산 시장은 공급 부족으로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10억 원을 넘어서며, 평범한 근로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셋째, 개혁의 명분과 사법 시스템의 혼란사법이다.
개혁의 명분은 거창했지만, 현실은 수사 인력 부족과 사건 적체로 이어졌다. 장기 미제 사건은 9만 건을 넘고, 사기 범죄는 연간 30만 건 이상 발생한다. 국민이 국가에 기대는 가장 기본적 질문인 “피해를 당했을 때 신속히 보호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개혁이 제도의 신뢰를 높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혼란이다.
“올바른 정치를 삼킨 팬덤과 진영 맹신”
넷째, 국민이 갈라졌다.
진보와 보수의 건전한 정반합이 아니라 정부 여당 주도의 편가름이 도를 넘어섰다. 내 편이 아니면 내란세력이라는 편협된 언행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정작 국민통합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정부와 여당이 패거리 정치를 구사함은 팬덤을 이루고자 하는 정치 속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지속적인 정치력 유지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합은 미사여구로만 쓰일 단어가 아니다.
정부의 유능함은 화려한 홍보 문구로 증명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객관적 현실 상황은 “일 잘하는 정부”라는 슬로건을 무색게 한다. 불리한 수치는 전임 정부의 연장선상이라고 탓해 왔다. 그러면 “왜 나아지지 않고 자꾸 악화하나?”라고 되물으면 무능함의 상태를 변명만 해온 꼴이 아닌가?
진정한 유능함은 경제 수치와 정치 오류를 숨기지 않고,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이제 정부는 감정적 수사 대신, 냉정한 지표가 가리키는 현실 앞에 정직하게 답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 국민 자신도 자각해야 한다. 선거에서의 지지와 이후 수행에 대한 지지는 달라야 한다.
“합리적이냐? 정의로운가? 국익과 통합에 부합한 국정을 수행하고 있는가?”
이러한 시각으로 냉엄하게 살피는 국민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민주시민이며, 선진국에 걸맞은 국민 자격이라 본다.
가장 아둔한 사람은, 지나간 한 번의 투표 행위에 불과했음에도 아직도 일찍, 이찍 운운하는 부류들이며, 선거 시점의 지지에 연연하여 현재의 옳고 그름까지도 따지지 않고 두둔하는 진영에 매몰된 사람이다. 매섭고 엄정한 비평 권리는 국민만이 가진 권력이고 의무이기도 하다. 이 글도 그런 맥락에서 살펴보았다.
글:이만식(이하,경동대학교 부총장.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