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용산 이거(移居)와 여야의 극한 대립
2022년 5월 10일 임금의 자리에 오른 윤석열은 취임하자마자 자질을 의심케 하는 첫 계기를 만든다. 백성의 고난 해결에 진력을 쏟아야 함에도 엉뚱한 일로 전대 정부처럼 에너지를 소비하고 말았다. 역대 임금들이 머물던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龍山)으로 집무실을 옮긴 일에 몰두했다.
정부는 이를 두고 말하기를, 청와대의 폐쇄적인 공간을 떠나 백성과 가까이하고 권력의 상징을 낮추려 함이라 하였고, 국방부와 인접한 곳에서 안보를 신속히 다루려는 뜻이라 하였다. 그러나 믿는 이 드물었다. “풍수지리에 따른 피흉(避凶)이라” 하거나 “전대와의 단절을 꾀하는 계책이라”는 항설이 대세였다.
사관이 이를 살피건대, 옛 태조가 개경을 떠나 한양으로 도읍을 옮길 때에도 명분은 새 나라의 기틀이었으나 실상은 옛 세력을 끊으려 함이었고 풍수에 기대어 국운을 새로 일으킴이었으리라. 용산으로의 이거 역시 권력의 뿌리를 새로이 내리려는 고집이었고, 이에 따라 막대한 재원과 안보의 우려가 따랐으니 이는 훗날 논란의 씨앗이 되었고 초기 국론 분열을 초래했다.
그러면 졸지에 영부인의 자리에 오른 김건희는 어땠나? 취임 이전부터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축년(2021) 12월 26일, 그는 스스로 나서 과거 경력 기재에 일부 과장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는데, 임인년(2022) 4~7월 통일교 청탁·금품 수수한 정황이 드러나 법적 논쟁이 일었다. 여기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하여 계좌 사용 및 관여 여부가 문제 되어 수사와 재판이 이어졌다.
후일 병오년(2026)에 제2심 법원은 징역 4년을 선고하였다. 사초를 쓰는 현재는 대법원 계류 중이다.
한편, 대권 실패자로 야당 수장이 된 이재명도 갖은 재판에 휘말려 있었다. 정치 판세의 주도권 싸움이기도 하지만, 판결이 임박하자, 입법권을 방패 삼아 조정을 흔드는 일이 빈번해졌다.
의석 다수를 차지한 거대 야당의 역대급 횡포는 국정 운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먼저, 탄핵 소추의 남발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비상계엄 선포 전까지 야당은 총 22건의 정부 관료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정부 예산안의 대규모 삭감을 야당 단독 처리하되, 검찰의 특수활동비(80억 원) 및 특정업무경비(506억 원), 감사원의 특활비와 특경비를 전액 삭감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통령실 예산까지도 옥죄었다. 여기에 재해대책 예비비(1조 원), 아이돌봄 지원 수당(384억 원), 청년 일자리 예산, 원전 및 심해 가스전 개발 예산 등 약 4.1조 원 규모의 정부안을 감액 대상으로 삼았다.
일부 국민의 지지를 얻고 시작한 ‘해병대원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으로도 대치 국면이 지속되었다. 또한 정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청문회와 국정조사가 빈번하게 개최되었다.
여당은 이를 ‘입법 독주 및 사법 방탄용 국정 마비”라고 규정하며 반발했다. 야당은 ‘헌법적 견제 권한의 행사’라고 주장하며 대립했다. 서서히 나라는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 ‘개딸'(이재명 지지 진영)과 ‘태극기부대'(윤석열 지지 진영)라는 양극단의 진영주의가 대립하여 국론이 혼탁해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용산 정치 일가에는 큰 변고가 준비되고 있었다.
사관은 논한다. 역사의 혼란은 지도자의 탓만 아니다. 그 시대의 백성의 몫이기도 하다.
선거에서의 지지와 이후 수행에 대한 지지는 달라야 한다. “합리적이냐? 정의로운가? 국익과 통합에 부합하는가?” 이러한 시각으로 냉엄하게 살피는 국민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민주시민이며, 선진국에 걸맞는 국민 자격이다.
가장 아둔한 사람은, 지나간 한번의 투표 행위에 불과했음에도 일찍(다수당인 선거 번호 1번에 투표), 이찍(2번) 운운하는 부류들이며, 선거 싯점의 지지에 연연하여 현재의 옳고 그름까지도 따지지 않고 비호하는 진영에 매몰된 사람들이다.
매섭고 엄정한 비평 권리는 국민만이 가진 권력이고 이로써 지도자는 헛튼 길로 가지 못하니 후일의 백성들은 이 시대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리라.
(다음 회 계속: 제3장: 대응 카드 비상계엄이라는 역린)
글:이하(李夏) 이만식(경동대 부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