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식 교수의 조각시 산책 8)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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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기억하네 
햇살과 비와 바람  
꽃으로 흔들리던 
그 봄날의 향내

ㅡ 뿌리 / 김향숙

In the darkness, I recall
Sunshine, rain, and breeze,
The scent of springtime days,
When flowers swayed with grace.
ㅡ Root by Hyangsook Kim

♧ 이 시를 대하자 문득, 어느 연밭을 지나면서 우아하게 핀 연꽃을 보고는 “뿌리는 얼마나 어둡고 두려웠을까? 저 환한 꽃잎을 피우려고!” 탄식했던 일이 떠오른다.

담담하게 표현한 김향숙 시인의 조각시를 거듭 살펴보니 내포가 간단치가 않다. 지난날에 대한 아름다운 회상과 속절없음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각시는 여덟 말 마디 내외로 짧기 때문에 평이하게 읽고 넘어가다가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많은 중의성을 발견하게 된다. 조각시의 묘미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뿌리는 화려하지 않다. 그렇지만 식물학 측면에서 뿌리는 영양의 제공, 몸체의 지탱, 성장의 방향 결정 등 생장의 근원이자 중심 역할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뿌리가 식물의 머리라 불리는 이유다.

뿌리는 무엇으로부터 출발했을까? 씨가 아니던가? 씨로부터 싹이 나고 햇살과 비와 바람으로 자라고 어느 봄날에 꽃을 피웠다. 그리고 마침내 씨앗을 맺고 그 씨는 다음의 꽃을 위해 뿌리가 되어 땅속으로 아니 어둠 속일망정 깊이 더 깊이 파고 들어갔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풍성하다고 용비어천가에서 빗대지 않았던가. 비단 나무와 화초뿐이랴. 가깝게는 부모가 그랬고 멀게는 성인이 그러했다. 그러기에 인문학적으로는 생명력과 모태, 원형과 근원, 역사 그리고 지혜를 뜻하기도 한다.

좀 엉뚱하게 벗어난 연상도 해본다. 뿌리는 씨앗을 위해 존재하고 씨앗은 싹수를 지닌다. 씨앗의 눈인 싹수는 햇빛, 물, 토양의 도움을 받아 새싹을 틔우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싹수가 없으면 뿌리도 없고 향기로움도 없다. 싹수를 속되지만 달리 표현하면 싸가지다. 싸가지가 없으면 뿌리(근본)가 없는 존재이니 사람다운 향내를 지닐 수 없다.
※ 김향숙 시인 – 경남 함양 출생,  2003년 <시현실> 등단. 시집 <따뜻한 간격>, <숲으로 가는 나무의자>,설악문우회 <갈뫼>,  고성문학 동인, 현재 한국문인협회 속초지부장

ㅡ 해설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최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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