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식 교수의 조각시 산책 6) 눈길

0
907

나무는 따뜻한 쪽으로
가지를 키우고
나는 가지 못하는 쪽으로
마음을 기운다.

ㅡ 눈길 / 김춘만

Trees grow their branches
Toward the warmth of the sun’s embrace,
But my heart yearns
For where I cannot reach.
ㅡ Snow Trail by Chunman Kim

♧ 학창 시절에 접했던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연상한다.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이 시는 전인미답의 길을 선택했고 이에 따른 삶의 현재가 달라졌다는 현상과 도전과 개척 또는 호기심까지 표현한 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근래에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여 풍자적 요소가 있는 시로 보기도 한다.
시를 세밀하게 살펴보면, 인적은 두 길 모두 지나간 발자국들이 있었고 그것도 ‘정말 거의 같게(really about the same)’ 다져져 있었다. 선택의 기로는 좀 있었으나 아주 미지의 길도 아니고 비슷한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훗날에 그 길의 선택을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라 말하는 건 과장이나 허풍 좀 떨었다는 게 아닌가?

김춘만 시인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하고 향리 고성에서 자연과 지질 해설로 봉사하며 지내신다. 삶의 여로도 그렇거니와 탐방객들을 안내하면서 익숙한 길과 그렇지 못한 길을 숱하게 만났으리라. 그럴 때 간길을 매번 택할 수밖에 없다. 험하더라도 새로움을 택하고 싶은 개인과 안전하고 실증된 경로를 밟아야 하는 공인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 없다. 회한이 있지만 아직 시도의 의지는 남아 있음이다.

표현상 나무의 ‘가지’와 내가 ‘가지’ 못한 곧 가지를 키우지 못한 곳으로 마음을 둔다는 ‘가지’는 엄연히 다른 품사이나 묘한 대조를 불러일으킨다. 하마터면 대응 이미저리에, 앞 구절 ‘가지를 키우고’가 있어 ‘마음을 기운다’를 ‘마음을 키운다’로 옮길 뻔했다.
만약 마음만 기울이지 않고 뻗은 가지처럼 행하였다면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두 가지 해석에서처럼 인생이 달라졌을까? 아니면 어차피 비슷했을까? (참, 해설이 고약하다.)

♧ 독자 질문 ㅡ 조각시에 운율이 있나요?
ㅡ 조각시는 짧은 자유시입니다. 그러므로 정형률은 없습니다. 다만 짧다는 범위를 설정하느라 ‘여덟 말마디 내외’로 형식 조건을 제시합니다.
조각시의 리듬 즉 율격은 자유시이므로 이의 내재율 원리를 따릅니다. 내재율이란 매우 주관적이고 애매한 개념이긴 합니다.  비교적 흔히 드러나는 전통적 음보(3 또는 4 음보), 감정에 관계되는 분위기와 느낌, 호흡과 휴지(쉬는 호흡), 길고 짧은 발성, 문장 기호 등등이 모두 내재율에 관계합니다. 조각시도 짧은 표현 속에서 이러한 내재율이 존재합니다.

ㅡ 해설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최병선

댓글 작성하기!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