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 사이로 보이는
끝없는 천공
하늘인 듯하다가
고향인 듯하다가
– 첫눈 / 장현숙
Through the drifting flakes,
the boundless above—
now sky,
now home.
ㅡ First Snow
by Jang Hyeonsuk
첫눈이 내리면 자기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창밖을 응시한다. 눈송이로 덮인 하늘과 기억의 경계에서 마음이 순수해진다. 장현숙 시인(2007. [문학사상] 등단)이 시와 함께 동봉한 시작노트다.
“눈 오는 날 거리를 걷다가 문득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본다. 저 빈 곳은 회색의 공간이다. 하늘인 듯하지만 하늘도 아니다. 걸어서 걸어서 어딘가에 도착할 것이다. 딱히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걸음을 옮기며 싸락싸락 내리는 눈을 맞아본다. 올해 들어 첫눈이지만 어깨에 쌓이고 머리에도 쌓여간다.
고향에도 이렇게 눈이 내려 쌓이곤 했다. 소복이 쌓인 눈은 눈이 부셨다. 이산 저산에서는 나뭇가지들이 딱딱 소리를 내며 부러져 내리던 밤, 회색의 공간을 지나 청명했던 그날의 시린 겨울 별빛들, 밤새 달빛에 반짝이던 눈. 그날처럼 오늘도 눈이 내린다.”
평자도 첫눈에 대한 조각시 몇 편이 있고, 고교 시절 쓴 설화형의 미셀러니로 남긴 글도 있다. 대강 이런 내용이다.
천상에 겨울을 맡은 어린 설녀(雪女)가 살았다. 그녀는 겨울을 지상으로 내리다가 선녀봉에 땔감을 준비하는 한 소년을 보고 첫눈에 반하여 몰래 사랑했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매일 매일 그 마음을 편지에 담아 첩첩이 쌓았다. 그리고 그녀는 소년이 첫 땔감을 하러 다시 산에 오는 날, 하늘에서 내려오는 자신을 한 번쯤은 봐줬으면 하여 아련한 마음은 담은 그 편지를 한 장 한 장 뿌렸다. 사람들은 이를 첫눈이라 했고 모두가 설녀 마음과 같이 설레었다. 그래서인지 첫눈은 유난히 가볍고, 소리 없이 어깨 위에 내려앉아 그리움을 속삭여주는 듯 하다.
실제로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첫눈을 사랑·인연, 풍작 등과 연결하는 믿음이 남아있다. ‘첫눈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보면 둘의 사랑이 오래간다.’ 또는 ‘봉숭아 물든 손톱 색이 첫눈 내릴 때까지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 와 같은 관념이나 예감·시발, 향수·연정 등의 미장센으로 현대 대중문화에 자주 차용되는 것도 전래한 민속적 사고라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때는 첫눈을 ‘초설(初雪)’ 또는 ‘신설(新雪)’ 곧 ‘새눈’이라는 고운 이름을 사용했다. 새눈을 반기는 재미있는 풍습도 있었다.
새눈이 내리는 날이면 조정의 모든 신하가 임금님께 예를 표하는 신설하례(新雪賀禮)라 흥겨운 행사를 진행하였다.
민간에서는 ‘새눈 선물하기’가 있었다. 고려시대 때부터 시작한 이 풍습은 ‘새눈’을 상자에 넣어 정성스레 보자기에 싸서 보내며 귀한 보양식이라고 속여 장난을 쳤다. 상자를 열어본 사람은 실망보다 파안대소로 즐거웠을 것이다. 속으면 한턱을 내야하고 속지 않으면 톡톡히 대접을 받으니 이리저리 잔치다.
나이가 좀 든 이라면 첫눈을 뽀드득 밟으며 ‘구두 발자국'(김영일 가사, 나운영 작곡) 동요를 연상하기도 한다. 무심코 발자국꽃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모두 유년의 동화마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거다. 그 추억은 깊고 길고 아련하면서도 아름답다.
첫눈은 시작이자 귀환이다. 세사에 찌든 나를 다시 순수하게 한다. 하늘 설녀가 전해주는 추억과 향수와 설렘을 돌려받는 날이다.
* 평설: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김경미(경동대학교 온사람교양교육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