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a Station of the metro
ㅡ Ezra pound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지하철역에서
ㅡ 에즈라 파운드
군중 속 홀연 스치는 얼굴들;
축축한 검은 가지 위 꽃잎들
♤ 조각 평설
에즈라 파운드는 어느 날 비 오는 저녁, 파리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여러 낯선 얼굴들이 바삐 나타났다가 한순간 사라지곤 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 순간을 그는 30줄이 넘는 긴 시로 썼으나 만족하지 못해 모두 버렸다. 그 뒤 “하나의 이미지(image)”로 엮고자 군더더기를 삭제하고 압축하는 퇴고를 거듭한 끝에 단 두 줄만 남겼다. 그는 “한순간의 정서적 번개”로서 묘사가 아니라 직관적인 느낌을 그대로 옮기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 시의 짧고 찰나적인 이미지의 밀도는 어떤 서사보다 깊다. 파운드는 지하철이라는 근대적 공간에서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을 ‘출현(appearing)’이라 부른다.익명화된 도시 군중 속에서도 어떤 얼굴은 번개처럼 마음을 스치고, 존재의 기척을 남긴다는 의미이다.
시는 순간의 감각을 추상적 설명 없이 곧바로 비유 이미지로 제시한다: “축축한 검은 가지”는 어둡고 젖은 도시의 메트로다. 그 위의 ‘꽃잎’은 음습한 공간, 익명의 군중 속에서도 불현듯 존재하는 인간 얼굴이자 고유한 생명이다. 이를 단 한 장면에 대비시켜 ‘문득 스치는 정서의 결정체’를 구현했다.
이 시는 1913년 4월에 발표되었고, 그는 ‘구체적이고 명료한 단어로 사물을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묘사’하려는 이미지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자리매김 했다.
한편 에즈라 파운드는 흑역사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반유대주의자였고 전범 무솔리니를 추켜세웠으며 한시(漢詩)나 하이쿠를 즐겨 하고 소개했으나 엉뚱하게도 유교를 파시즘에 연결하려 했다. 전후 전범재판에서 12년 수감 처분을 받기는 했으나 만약 문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말로가 더 비참했을 것이다.
공자의 말대로 시는 사무사(思無邪,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음)의 결과물이긴 하나 모두 그렇지는 않다. 시로서 사악한 인간임을 다 파악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과거 친일 시인이 그랬다.
요즘에도 욕설 패악질하는 시인이 방송에 출연하며 인기를 누리고, 진영주의에 빠져 잔인한 욕설로 분풀이하던 시인도 그의 시가 교과서에 실리고 광화문 걸개에 아름다운 시로 걸린다. 시인은 시로 참 위장하기 좋다.
ㅡ 평설. 번역: 이하(본명 이만식, 시인, 시조시인, 조각시 창시, 세종문화예술대상 수상, 문학박사, 경동대학교 부총장. 저서 17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