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식 교수의 조각시 산책 35) 추석/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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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식 교수의 조각시 산책 35)

한가위 이튿날
외손주가 왔다.
이윽고 명절이다.
ㅡ 추석 / 이하

Chuseok
by Yi Ha

The day after Chuseok,
my daughter’s son came.
Now at last,
the holiday is here.

♤ 조각 평설
한가위 다음날 외손주가 드디어 왔다. 할머니~ 하고 들어서자마자 안긴다.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는 자태도 제법이다. 웃음이 집안 가득 번진다. 분주하고 법석이는 추석이었지만 한편으로 허전했다. 이제 온전한 명절이 되었다.
이 시는 명절은 달력상의 휴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이 다 모이는 순간이 진정한 명절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조각시에서 ‘손주’라 해도 될 걸 굳이 ‘외손주’라고 했을까? 성평등 언어 관점에서 보면 부계 중심성이 깃들여 있기에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나 딱히 대체 낱말이 없거니와 치밀한 의도가 있다. 차별어 ‘외손주’가 아니라 구별어로써 활용이다. 시인은 이 한 단어로 전래 관습과 사랑의 정서를 동시에 제시했다. 여성 입장에서는 명절 당일은 시가에 가고 여건이 되면 친정에 가는 풍토였다. 지금은 참례 여부, 거리나 시간, 가족 구성의 성격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 맥락에서 가족어는 부계는 본가, 모계는 외가로 다소 위계화되었다. 그래서 외가를 대신해 ‘모가(母家)’, 외손주를 ‘딸손주’ 등으로 부르자는 시도가 있었지만 억지스러워, 일상어로 자리 잡지 못했다. ‘외손주’를 일상에서는 그냥 ‘손자, 손녀’로 부른다. 다만 반드시 구별해야 할 때도 있는데 굳이 쓴다고 해서 차별성의 단어로 민감하게 볼 필요는 없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시니피에(어의, 뜻과 내포적 성질)가 변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불평등한 뉘앙스나 차별성 언어로 인식하기보다, 혈연적 위치를 설명하는 구별 언어일 뿐이다.
근래에는 점차 친정.처가 우위로 전환되고 있는 시대다. 차별하여 친정.처가를 등한시하고 시가. 본가를 더 자주 접한다는 사실은 고리짝 얘기다. 이미 여러 설문조사와 통계가 이 점을 입증하고 있다.
역사적 어원의 차별감으로만 국어를 죄다 손질을 가한다면 우리말의 상당수가 사장되어 언어의 역사성과 문화성이 크게 훼손되고 혼란과 갈등을 초래하니 신중해야 한다.

한가위 어원은, 한은 대(大), 가위는 보름(옛말은 가배>가위, 가운데, 한 달의 가운데는 보름)이라는 뜻이니 ‘한가위=대보름’이다. 차례, 송편, 성묘, 그리고 가족의 만남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다. 반달 모양으로 빗든 둥글게 빗든 송편피 바탕은 보름달 모양이다. 한결같고 동질성을 지닌 이데올로기는 보름달처럼 둥글고 훤한 한울타리 ‘우리’라는 근원이다.
ㅡ 중추가절(中秋佳節), 즐겁고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ㅡ 평설: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김경미(경동대학교 온사람교양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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