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식 교수의 조각시 산책 27) 야생화 / 한상호

0
2000

미안하다
야생화로 부르려니

태초엔 너나없이
들판을 헤매이던 것들

ㅡ 야생화 / 한상호

My apologies,
for naming you wildflower.

In the first light of time,
All alike, we wandered the fields.
ㅡ wildflower by Han sangho

짧은 시는 자칫하면 언어 유희 수준에 머물 수 있기에 절제된 표현 속에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생명을 가진 유기체는 외형의 단순성을 추구한다. 시가 짧은 이유다. 한상호의 시는 생명 세상을 현상함에도 최소한의 언어를 구사한다. 짧게 함축하면서 시적 전달이 가능한 것은 문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김미옥 문예평론가가 어디에선가 대강 이리 논한 바 있는데 공감한 바 있다.

생명 세상은 복잡하다. 그러나 이 조각시는 간결하다. 본래 시는 변죽을 울려 본질의 소리를 알리고자 한다.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 중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야생화’ 하나를 들어 존재의 근원을 살핀다. 그마저도 짧게 표현했으나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그 폭과 깊이는 범상치 않다. 인간 역시 태초의 야생에서 비롯된 존재임을 부드럽게 고백하며,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잊힌 우리의 야생성을 돌아보게 만든다.

시의 첫 구절이 묘하다. 단순한 사과를 넘어선다. 인간이 자연을 분류하고 명명한 인위적인 이름 그것도 야생화로 뭉뚱그렸다. 시인은 이 이름이 본래의 존재 방식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함을, 혹은 그 이름을 붙임으로써 본질을 훼손하는 것 같은 성찰이 담겼다. 이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문명의 틀에 가두면서, 태초의 본성을 잊고 사는 것에 대한 은유적인 반성이기도 하다. 자유로움과 본능적인 생명력을 지닌 존재, 이는 야생화뿐 아니라, 인간 역시 그러함을 말한다.

야생화 군락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개화의 과정은 치열한 생존 경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더 많은 햇빛과 물과 영양을 차지하기 위해 깊이 뿌리내리고 더 뻗고자 한다. 다른 식물과 경합하며, 때로는 알렐로파시(Allelopathy)와 같이 독성 물질을 분비하여 주변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거나 촉진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한다. 한편으로 야생화의 독성은 단순히 방어 기제를 넘어, 생태계 내에서 화학적 경쟁(chemical warfare)을 조율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존 전략은 인간 역사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약 4만 년 전까지 유럽과 서아시아를 누비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을 건 경쟁자였다. 베스트셀러인 <사피엔스>(저자 유발 하라리)에서도 다룬 바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은 그들의 멸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원시 사회에서 사냥과 전쟁은 생존과 세력 확장을 위한 피할 수 없는 행위이나 종종 잔인함을 동반한 파괴 본능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자연 질서 속에서 생존하려는 필연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야생화와 애초 야생이었던 인간은 같은 자연의 섭리 아래 존재한다. 생존을 위한 고투 속에서도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는 본성을 품고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때로 잔혹한 생존 방식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명을 발전시키고 공동체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삶을 일구어낸 것처럼, 야생화 또한 거친 환경 속에서 피어나며 생태계를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도 조화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자연의 원리”라는 인문학적 통찰로 깊이 해석될 수 있다.

시인의 ‘야생화’는 우리 내면의 잊혀진 야생성과 본질적인 생명력을 성찰하게 한다. 인간이 문명을 이루었지만, 그 근본은 여전히 자연의 일부이며, 야생의 본능과 생존을 향한 의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조화를 추구하는 본성이 우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일러준다. 조화를 거부한 지금의 인간 군락의 파괴성에 대한 경종도 여백에 남기면서.

* 한상호: 등단: 2016년 <문학세계>, 2017년 <시와시학> 등단, 강원 양양 출생, 연세대학교 중국어문학과를 졸업.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 역임,
시집「아버지 발톱을 깎으며」,「꽃이 길을 놓았을까」, 「어찌 재가 되고 싶지 않았으리」등, 양양문인협회 회장, 서울문인협회 부회장, 한국시인협회 회원, 금탑산업훈장 수훈과 제3회 아시아시인상 수상.

ㅡ 해설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김경미(경동대학교 온사람교양교육대학 교수)

댓글 작성하기!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