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식 교수의 조각시 산책 10) 호수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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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그늘이 필요해
호수는 산그림자를 담는 거야
ㅡ 호수와 하늘 / 이하

Even the sky
needs shade
The lake cradles the mountain’s shadow.
ㅡ The lake and the sky by Leeha

♧ 세상 모든 것은 쉴 수 있는 그늘이 있다. 바다와 산도 때로 하늘이 보내는 구름으로 그늘을 만난다. 그러한 하늘은 정작 그늘이 없다. 인간사로 보면 온갖 간구를 들어주고 쉼터가 되어주시는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그러한 격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렇고 참된 스승이나 베풀고 사는 사람 또한 그렇다.

어느 날 속초 영랑호 둘레를 이하 시인 부부가 돌고 있었다. 시인은 산책하고 아내는 산보를 하다보니 멀찌감치 가던 아내는 몇 번 되돌아오기 일쑤다. 산책자는 맑고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며 걷다가 상기된 표정으로 아내를 불러세웠다. “저기 봐! 산그림자 아래.” 아내는 애써 고기를 찾고는 “뭐가 있다는 거야?” 반문한다. “수면 산그림자 아래! 구름과 하늘도 저 그늘에서 쉬잖아.”
구약성서에서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다.”(전도서 1장 8절) 했다. 그래서 인간은 여호와의 그늘 쉼터가 필요하다. 불교적 사유로 보면 세상은 갈망과 집착으로 번뇌가 가득하다. 가피의 그늘이 필요하다. 호수와 산그림자는 하늘로부터 그늘을 제공받던 피조물이다. 그렇지만 호수 속에서는 도리어 드리워진 산그림자로 하늘에 그늘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경전의 일화다. 부처님이 영산회(靈山會)에서 연꽃 한 송이를 대중에게 보였다.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 짓자 이에 빙그레 답하셨다. 또 예수님은 자신을 보고 싶어 하여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보시자 인자하게 내려오라 하셨다. 그렇다. 온갖 근심을 다 품어주기에 피곤했을 구원자에게 가섭과 삭개오의 모습은 잠시라도 호수의 산그림자 같았으리라.

부모도 늘 그늘 쉼터가 되어준다. 반면에 자식 또한 그러할 수 있다. 유학 효경에서 ‘뜻을 세워 바른 도를 행하여(立身行道) 이름을 후세에 떨쳐(揚名於後世) 부모까지 드러내게 함도 이와 같으리라.
거창하지 않아도 스승의 날 드리는 감사의 문자 한 통이나, 직장 내에서 수고 많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나, 사회에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말로도 서로 좋은 그늘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조각시는 짧은 시 중에서도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는 간단치 않다. 이 시의 첫 행을 이하 시인은 우리나라 첫 조각시집의 제목으로 삼았다.

ㅡ 해설 이하(李夏. 이만식) / 번역 최병선

8 댓글

  1. 형식은 내용을 지배하고
    내용은 형식을 앞지르네

    전체가 조각을 지배하듯
    조각은 전체를 아우르네

    조물주가 세상을 주무르듯
    이하는 조각을 주무르네

  2. 성경 사랑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라는 글에서 참는다는 의미는 인내하다 라는 의미 보다는 덮어준다(cover), 눈감아준다는 의미입니다. 이하 시의 그늘은 쉼도 되지만 허물을 덮어준다는 의미도 될 듯합니다. 참 의미가 깊은 조각시입니다.

  3. 세 줄의 조각시 안에도 생생히 담겨 있는
    자연과 닮은 우리의 삶을 떠올리곤 합니다.

    해설을 읽으며
    우리 인생길에서 서로의 그늘이 되어주는 것에
    더욱 아끼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늘 고운 싯구로 마음을 정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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