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바위는 크다.미시령을 넘어 오면서 차창으로 보이는 울산바위는 지역 어디를 가든 따라 다닐 정도로 중심을 잡고 서 있다.모노리스(MONOLITH)라는 말 그대로 거대한 바위덩어리는 풍경을 압도하면서 설악의 상징으로 수호신처럼 서 있다.시대를 넘나들면서 화가들이 화폭에 욕심을 내고 싶은 명소로서 울산바위 만한 대상도 없다.3월에 내린 폭설로 흰옷을 두른 울산바위는 요즘 장관이다.
실은 울산바위는 마주하기 버겁다.규모와 형상을 캔버스에 옮겨놓는 작업이 녹록치 않다.그 점에서 화가 김정호는 진심이고 도전적이다. 그는 울산바위와 배짱있게 정면승부하고 있다. 추운 겨울날 울산바위가 들려주는 영혼의 바람소리를 듣기 위해 털모자에 귀마개를 하고 미시령터널 톨게이트 폐건물 귀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유화캔버스를 신들린 듯 메워가는 그의 모습은 지나치는 관광객들에게 회자될정도다. 울산바위를 온몸으로 느끼고 거기서 국수가닥처럼 뽑아져 나오는 혼이 서린 필을 캔버스에 적는다는 게 그의 울산바위 畫法이다.
속초에 화실을 마련하고 순례자처럼 정기적으로 내려와 울산바위를 마주하면서 그는 울산바위를 섭렵했다.이번에 선보이는 울산바위 연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울산바위를 이토록 철두철미하게 접근하고 완벽하게 표현해 내려는 작가는 그가 아마도 처음인 듯 싶고 그 점에서 그는 울산바위 화가라는 월계관을 써도 무방하다.
그의 울산바위는 변신해 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형상에서 추상성이 가미된 형태적 질적 승화로 나가고 있고 세세한 묘사에서 단순함으로 군더더기가 쳐내지고 있다.단순함이 쉬운듯하지만 더 어려운법, 있는 그대로야 게으름 없이 묘사하면 되지만 단순함은 그 이상의 통찰과 철학,직관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그냥 한두개 선을 긋는 게 아니라 형상을 심지처럼 세우면서 그 속에 본질이 주는 질감과 색감을 다 녹여야 하고 그게 관객의 가슴에 와 닿아야 하기 때문이다.이런 인식론적 전환과 도정을 김정호는 순탄하게 소화해 나가고 있다.울산바위 시리즈를 유심히 관찰하면 그의 인식과 통찰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포착되면서 그의 그림 보는 맛이 배가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단순함의 형이상학속에 미학이 곁들인 능란한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중이다.그는 비우고 정상을 향하는 구도자의 붓을 선택하고 있고 희망컨대 머지않은 미래에 도착할 듯 하다.
이제 그는 단순함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추상성의 경지 근처에 까지 왔다.지난 겨울 울산바위 작품들은 그가 추구한 변신을 잘 대변하고 있고 매우 성공적이다.형태를 넘어 색감에 까지 변화가 느껴지는데 ‘블루’ 울산바위는 그가 추구하는 단순함의 미학을 바위 정상에 까지 올려놓고 있는 모습이다.근사하다. 저거 울산바위다 라고 하는 쉬운 만남에서 좀더 부연적 설명이 필요한 스캐치와 색감이 화폭을 지배하면서 한단계 더 높은 차원의 경지를 보여준다.
자유로 향한 여정이다.‘서울의 달’이 아닌 ‘울산바위’에서 더 높이 더 멀리 새처럼 훨훨 나는, 덜어내고 내려놔야 단순해지고 그래야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김정호의 ‘퀘렌시아(QUERENCIA)’다.봄에서 여름 가을을 경유해 겨울에 도달한 그는 하얀 캔버스 눈밭에 홀로 단독자로 서 있다.이런 김정호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그림을 음미하면 그의 울산바위 그림은 장강의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면서 또 하나의 거대한 풍광이 되고 있다.
그 풍경의 한켠에 그의 바닷가 퀘렌시아 아틀리에인 속초화실이 있다. 실향민 아바이마을과,갯배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화실에서 그는 내면에 더덕더덕 붙은 도시의 혼탁한 먼지를 닦아내면서 새벽 고등어같은 바다를 그린다.속초바다를 압축적으로 옹기종기 표현한 정감있는 바다 그림도 이번 전시회에 걸리다.쉼의 갈피에서 솟구치는 영적에너지를 끌어 올리면서 산과 바다의 이중주를 그는 먼땅 속초에서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김정호 설악전(4월15일-21일 서울 인사동 LAMER)의 미덕과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고 이는 두루 공유될수 있는 공통분모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울산바위가 온 국민의 상징적인 돌덩어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김정호의 울산바위는 국민바위의 이미지를 이 봄에 백성들 가슴에 새겨 놓고 있다.
울산바위를 붙들고 더 단순하게 나가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그는 가히 울산바위 작가로 포지션을 잡을 것이고 이 또한 애호가들의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부드러운 듯 하지만 과감한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 물감을 듬뿍 짜내 캔버스에 시원하게 풀어 놓으면서 그는 신들의 처소 울산바위를 우리곁으로 더 친밀하게 데리고 오고 있다.그가 울산바위를 통해 말하려는 대목이 그냥 단순화한 바위가 아니라 삶의 풍경내지 태도 , 이 소란스런 세상에 침묵내지 은근함같은 거라는 것을 살짝 말해 주고 싶다. 그의 울산바위는 그래서 매력적이고 實景 울산바위 여행전 먼저 한번 감상할 필요가 있음을 감히 추천하고 싶다.
신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