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바위, 하나의 선택이 된 자연… 김정호의 블루 울산바위

0
45

빛의 화가 렘브란트는 “단 한 분의 스승만 선택하라. 자연이다”라고 말했다.

김정호는 램브란트의 이 말을 자신의 화폭 위에서 실천하고 있는 작가다. 그가 선택한 스승은 울산바위다. 울산바위는 그에게 스승이면서 친구이고, 때로는 연인과도 같다.

그는 울산바위를 한두 번 그린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거의 매주 울산바위를 찾아 그리고, 같은 대상을 수없이 반복해서 바라본다. 그런데도 싫증이 없다. 오래된 연인이나 오랜 친구를 만날 때처럼, 볼 때마다 새롭고 다르다. 계절이 바뀌고 빛이 바뀌고 바람이 바뀌면 울산바위 역시 다른 얼굴을 내민다. 김정호는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울산바위의 옛 이름은 천후산(天吼山)이다. 하늘이 울부짖는 산이라는 이름처럼, 그곳에는 계절을 넘나드는 수많은 바람의 소리가 있다. 김정호는 어쩌면 그 바람의 결을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눈으로 본 풍경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의 소리와 기운을 색으로 바꾸어 화폭에 옮긴다. 특히 그의 블루는 단순한 색채가 아니다. 그것은 울산바위에 부는 바람과 빛, 시간과 감정이 만나 승화된 색이다.

울산바위를 날마다 바라보는 주민의 눈에도 김정호의 울산바위는 신비롭고 새롭다. 같은 산을 그렸는데도 매번 다르다. 때로는 정적이고, 때로는 폭발적이며, 때로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꿈틀거린다. 역동적이다.

그의 그림에는 대상을 설명하기보다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시선을 한곳에 붙들어 놓고, 대상의 본질적인 포인트를 잡아내며, 마침내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울산바위를 붙들어 놓는다. 그것은 어쩌면 영적인 마력에 가까운 힘이다.

김정호는 직관으로 그린다.

그가 순간적으로 울산바위를 포착하는 힘은 단순한 순발력에서 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울산바위로 달려오는 여정 속에서 오랫동안 곰삭은 내면의 담금질, 수없이 바라보고 실패하고 다시 그린 시간들이 순간의 붓질 속에서 폭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둔중한 몸을 나비처럼 날리며, 속사포처럼 속필로 붓을 움직인다. 그 짧고 빠른 붓질에는 오랜 시간이 들어 있다. 겉으로는 순간이지만 그 순간을 가능하게 한 것은 긴 내면의 숙성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호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연 그 자체를 닮았다. 계산보다 직관이 앞서고, 설명보다 생명이 먼저 움직인다. 그래서 그의 울산바위는 더 이상 특정한 한 작가의 사적인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울산바위는 우리 모두에게 스승이고, 친구이고, 연인이 된다.

삶이 지루할 때, 사람에게 배반당했을 때, 마음이 상하고 세상에 속이 뒤틀릴 때 울산바위를 바라보면 이상하게 엉킨 마음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린다. 거대한 바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결국 하나의 선택은 인생의 선택지다.그 선택의 고뇌 속에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 있고, 그 선택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데서 한 사람의 예술적 경지가 만들어진다.

김정호에게 울산바위의 선택은 바로 그런 선택이다. 램브란트가 말한 “단 하나의 스승, 자연”을 그는 울산바위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수없이 그 산을 바라보고 그리면서 이제는 울산바위의 높이만큼 자신의 예술적 경지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산의 정상에 오른 사람에게도 그 뒤에는 또 다른 영봉과 거봉이 펼쳐진다.

김정호는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이미 새로운 등정을 꿈꾸고 있다.

울산바위를 가슴에 걸머지고, 그는 오늘도 우리를 블루의 향연으로 초대한다.

2026년, 김정호의 블루 울산바위.

녹초가 된 영혼을 달래는 푸른 산.
말없이 서 있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산.
그리고 한 화가가 평생의 스승으로 선택한 산.

울산바위는 오늘도 그 자리에 있고, 김정호는 오늘도 그 산을 그리고 있다.

신창섭

댓글 작성하기!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