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문헌에 나타난 울산바위 이름은 ‘천후산’이 다수…김광섭씨 논문에서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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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바람이 대차다.평지에는 비가 살짝 뿌렸지만 설악은 온통 하얗다. 설산 울산바위의 모습은 거대한 벽화처럼 웅장하고 늠름하다.대찬 바람에 통곡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가 지금 통칭으로 쓰고 있는 울산바위는 1884년 간성군수 고영희가 쓴 ‘간성읍지’에 처음 등장한다.이때를 시작으로 울산바위라는 지명이 널리 펴지면서 오늘날에 와서는 천후산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울산바위라는 지명으로 정착되었다.울산도 경상도 울산이 아니라 울타리라는 의미의 울산이라는 것.

이전 문헌에는 천후산이 주된 명칭이었다. 청간정 사료관장 김광섭씨의 논문(조선시대 울산바위 역사적 고찰)에 따르면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서 “간성 남쪽 70리에 천후산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같은 관찬지리지 뿐 아니라 간성현감을 지낸 택당 이식의 사찬 지리지 ‘수성지’에도 그렇게 돼 있다.관동록,동정기등에서도 마찬가지다.많은 묵객들이 남긴 시문에도 천후산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산수가 빼어나기로는 금강산이 으뜸이다. 천리를 지나 수성(水城)에 있고 그 남쪽 미륵고개에서부터 우불구불 연연히 이어지다가 크게 솟은 것은 설악산이요. 작게 이루어 진 것은 천후산이다. 십리에 걸쳐 솟아 있는 천후산은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설악산의 아들이요 금강산의 손자라고 할만 해서 그야말로 정토를 생생하게 그려놓은 것 같다. 천후산이라고 하는 것은 산 위에 큰 구멍이 있어 바람이 불라치면 목석이 날아오고 우뢰가 우는 듯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용암당유고’에 실린 양양부사를 지낸 이현경의 ‘천후산 계조굴 중건기’에 나오는 내용이다.천후산을 설악산의 아들이요 금강산의 손자라고 호명하고 있다. 멋진 비유다.

오늘같이 바람이 세차고 눈 덮인 울산바위는 영락없이 천후산이다. 그래서 천후산으로 불러야 제맛이 난다.

신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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