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호, 더 늦기 전에 공공의 마스터플랜을 세워야 한다

0
54
@

영랑호는 속초의 심장이자 시민 모두의 자산이다. 단순한 호수가 아니라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석호이며, 자연생태와 시민의 삶이 공존하는 공공재다. 그럼에도 영랑호를 바라보는 속초시의 정책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관된 철학도, 장기 비전도 없이 그때그때의 개발 논리에 끌려온 것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영랑호 개발의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동방원양이 내수면 어업권을 허가받은 뒤 호반 일대에 콘도 개발을 추진하면서 영랑호는 본격적인 개발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골프장과 대형 숙박시설, 고층 콘도 등이 차례로 들어섰고, 그 과정에서 호반의 사유지는 점차 확대됐다. 시민 누구나 누려야 할 공간이 조금씩 사유화되면서 공공성은 후퇴했고, 영랑호의 원형도 서서히 변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정작 속초시는 영랑호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독자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 도시의 가장 중요한 자연자산을 어떤 철학으로 보전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계획, 즉 마스터플랜이 사실상 부재했던 것이다.

최근 추진되는 영랑호 관광단지 개발 역시 이러한 문제를 다시 드러낸다. 사업의 큰 그림은 민간 개발사업자가 제안하고, 행정은 이를 검토하고 수용하는 형태에 가깝다. 도시가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그린 밑그림을 따라가는 모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민간투자는 도시 발전에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도시의 핵심 자연자산에 대해서만큼은 순서가 달라야 한다. 먼저 지방정부가 시민과 함께 미래상을 제시하고, 그 원칙 안에서 민간의 참여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정상적인 도시계획이다. 영랑호처럼 대체 불가능한 자연유산은 더욱 그렇다.

순천만은 좋은 사례다. 한때 매립과 개발 대상이던 순천만은 행정이 장기적인 생태보전 전략을 수립하고 시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생태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관광시설을 많이 지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전하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는 철학을 세웠기 때문이다.

반면 영랑호는 크고 작은 개발이 반복됐지만, 시민을 위한 공간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 생태적 가치를 어떻게 높일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 전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산책로를 일부 정비하고 시설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종합적인 구상이 부족했다. 그 빈틈을 민간 개발사업이 메우기 시작했고, 이제는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대로라면 영랑호는 돌이킬 수 없는 갈림길에 설 수 있다. 영랑호가 훼손되는 것은 단순히 경관 하나를 잃는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이 누려온 녹색 휴식공간이 축소되고, 생태계가 흔들리며, 속초라는 도시의 정체성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 한번 훼손된 석호 생태계는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개발계획의 찬반을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이다. 속초시는 영랑호를 공공재라는 원칙 아래 다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원점에서 영랑호 종합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한다.

그 마스터플랜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야 한다.

  • 영랑호 생태보전 원칙과 개발 가능 범위 설정
  • 공공 녹지와 시민 이용공간 확대 방안
  • 호반 사유화 억제와 공공 접근성 강화
  • 경관 및 건축물 높이 관리 원칙
  • 문화·역사·생태를 연계한 시민공원 조성계획
  • 장기적인 생태복원과 수질관리 계획
  • 시민참여형 거버넌스와 숙의 절차 마련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 공론화다. 영랑호의 미래는 특정 기업이나 행정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속초 시민 모두의 삶과 직결되는 공적 의제다. 시민, 전문가, 환경단체, 지역사회가 함께 숙의하는 과정을 통해 미래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영랑호는 개발의 대상이기 전에 시민의 공간이다. 투자 가치보다 공공 가치가 우선해야 하며, 경제적 수익보다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지가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속초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민간 개발계획을 따라가는 도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는 도시가 될 것인가.

영랑호는 속초가 가진 마지막이자 가장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개발계획이 아니라, 앞으로 50년, 100년을 내다보는 공공의 마스터플랜이다. 그것이 영랑호를 지키고 시민의 삶을 지키며, 속초의 미래 경쟁력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

설악투데이 특별취재반

댓글 작성하기!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