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바다와 이별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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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락가락한다. 날도 선선해졌다.
며칠 전만 해도 뜨거운 바람이 볼을 스치더니, 어느새 계절이 한풀 꺾인 듯하다.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따는데 땀이 흐르지 않는다. 이게 훨씬 낫다 싶으면서도 마음은 바쁘다. 얼른 따서 말려야 하는데 또 비 소식이다. 농부에게 날씨는 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저녁은 깻잎 양배추를 라이스 페이퍼에 싸서  쌈으로 간단히 때웠다. 그리고 바다로 향했다.

고성의 밤은 어둠 그 자체였다.

거진읍내도 한적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정적 사이로 몇몇 가게의 불빛만 가로등처럼 드문드문 보였다. 8월의 밤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낯설었다.

뒷장으로 들어서자 파도 소리가 천둥처럼 밀려왔다.

차창 너머로 하얀 포말이 하늘 높이 솟았다가 무너져 내렸다. 바위에 부딪친 파도는 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는 듯했고, 부서지는 순간에는 대포 소리 같은 굉음을 냈다.

태풍 전야라서 그런 것일까.

무섭기까지 한 광경인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서 ‘천지창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자연이 밤의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깨우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파도 소리를 담으며 화진포로 이어지는 길을 달렸다.

길은 한산했고 불빛도 거의 없었다.
화진포 해수욕장에 이르니 더욱 고요했다.

비가 내리는 날씨 탓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여름이 이렇게 슬그머니 이별을 준비하는구나.

화진포 호수도 홀로 웅크린 채 고요한 적막을 만들고 있었다. 사람의 인기척은 어디에도 없었다. 해변을 에워싼 몇 개의 불빛만이 어둠 속에 외롭게 서 있었다.

‘아, 이게 여름 바다구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햇볕과 열기로 가득했던 바다가 이렇게 빠르게 정적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일하기조차 버거울 만큼 무더웠던 날들이었다.

그 더위가 물러간다니 시원하고 반갑다.
그런데 막상 조용해진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 한편이 묘하게 서늘하다.

여름이 지나가는 것이 계절 하나가 가는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여름이 가는 만큼, 우리 세월도 함께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였을까. 화진포의 바다는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파도는 여전히 바위에 부딪쳐 큰 소리를 냈지만, 그 소리마저도 한 계절의 마지막 인사처럼 들렸다.

여름아,그동안 참 더웠다.

글:변현주 | 고성군생활개선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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