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마당의 복사꽃 빛이 참 진하다.
이번 봄이 그리 썩 반갑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봄은 역시 꽃으로 온다. 꽃으로 뒤덮인 마을, 꽃내음과 사람 발걸음이 뒤섞여 소란한 동네의 꿈은 우리 지역에선 언제쯤 가능할까.
심드렁한 봄날, 가볍게 길을 나섰다. 7번 국도를 달리다 문득 매호에서 차를 세웠다. 지나치며 한 번쯤 둘러보고 싶었던 작은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였다.
출발할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걸어 들어갈수록 맛깔이 제법 삼삼했다. 무엇보다 걷기가 편했다. 인공 구조물이 눈에 거슬리지 않고, 마치 동네 골목길을 걷듯 길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세심한 손길이 간 흔적이 곳곳에 묻어났다. 군데군데 놓인 의자에는 사람들이 앉아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 자체가 또 하나의 풍경이었다.
탁트인 시선 너머로는 7번 국도를 오가는 차들이 지나가고, 건너편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삶과 자연이 억지스럽지 않게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는 풍경이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휑한 가슴 한쪽을 천천히 채워준다.잠깐만 걸으려다가 결국 한 바퀴를 다 돌았다. 2.5킬로미터 남짓. 매호라는 이름은 병풍처럼 둘러선 뒷산에 매화나무가 많아 붙여졌다고 한다.
갈대숲 사이를 헤엄치는 오리와 이름 모를 새들, 호수 중간중간 듬성듬성 자리한 하중도, 한눈에 들어오는 잔잔한 수면…. 전체 풍경은 마치 엄마 품처럼 편안하다. 필요한 곳에만 절제해 놓은 데크길, 큰 굴곡 없이 평지를 걷듯 이어지는 둘레길 덕분에 쉬엄쉬엄 걷고, 멈춰 서고, 빈둥대며 시간을 흘려보내기 좋다. 매호 둘레길의 진짜 매력은 화려함이 아니라 이 느슨한 편안함에 있다.오래된 익숙함 같은,마실 나온듯 가볍고 신뜻한.
동해안의 석호는 많지만, 이렇게 전체 둘레길이 부담 없이 걷히는 곳은 이곳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길을 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자연은 그대로 살리고, 인위성은 최대한 덜어냈다. 사람에게 길을 내주되 자연을 밀어내지 않은 셈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고성은 석호의 고장이라 자랑하지만 정작 사람들을 호수 가까이 오래 머물게 하는 길은 얼마나 갖추고 있을까. 각 호수마다 이렇게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편히 걸을 수 있는 둘레길부터 조성하는 일이 먼저 아닐까. 매호를 한 바퀴 돌고 나오며, 양양의 작은 석호 하나가 던진 여운이 꽤 오래 남았다.
글:변현주( 카페 꽃담길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