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빠진 청간정 현판 기록…”일제강점기 복원 애쓴 김용집 중수기문 게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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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53년 당시 청간정(최철재 교수 제공)

지역의 재발견, 청간정 중수기문 중에 알짜가 빠져있다. 지난 9월말 청간정 보수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청간정 마룻바닥 나무판 부식, 기둥 손상 그리고 훼손된 돌계단 때문에 방문객의 안전사고 위험 때문에 지난해 전면적 해체 보수공사를 시작한지 8개월이 걸렸다. 강원도의 도비 1억 6천만원과 고성군의 군비 2억 4천만원 총 4억원이 투입되었다,

청간정 보수공사가 마무리 되면서 청간정 자료전시관에 임시보관 중이던 현판과 시판 그리고 여러 중수기문이 다시 청간정 정자 안에 걸리게 되었다. 필자가 어렵게 되찾은 1953년 우남 이승만 대통령의 칠언율시 시판과 함께 회수한 동해유림의 시판도 제자리에 걸리니 그동안 지역의 재발견에 따른 연구의 결과물이라 감회가 새롭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의 최초 건립자와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김광섭 향토사학자의 연구를 살펴보면, 1560년 간성군수 최천(崔倩)이 처음 수리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간정의 본래 위치는 현재 군사보호시설인 만경대 인근에 있었는데1884년 갑신정변 때 소실된 것을 1928년 토성면장 김용집(金溶集)이 지금의 위치에 옮겨 재건한 것이다. 그러다가 6.25전쟁 당시인 1953년에 이승만 대통령의 뜻에 따라 중수하였고, 이후 1980년과 2012년에 해체보수가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이번에 다시 중수한 것이다.

그래서 청간정에는 여러 중수기문이 걸려 있다. 청간정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들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정작 있어야 할 김용집의 중수기문 현판만 없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에 힘겨웠던 시기에 중수한 토성면장 김용집의 「중건청간정기(重建淸澗亭記)」 현판만 유독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중수기 문헌 기록은 이러하다. “물의 근원이 신선봉 아래에서 나와 굽이쳐 흐르다가 정자 위쪽에서 나뉘어 흘러 남쪽으로는 천진교(天津橋)가 되고, 북쪽으로는 청간교(淸澗橋)가 된다. 정자 아래쪽에서 다시 하나의 시내로 합쳐져 정자를 감고 굽이돌아 바다로 들어가는데, 그 정자의 이름은 청간정(淸澗亭)이다. 산의 여러 봉우리가 울창한 모습으로 솟아 있는데 가까운 듯 먼 듯도 하며, 병풍(屛風) 같고 장막(帳幕)을 친 것처럼 막힌 듯도 한데, 아침의 구름과 저녁노을, 꽃피는 봄과 가을 단풍 등 천태만상(千態萬象)으로 변화하는 것은 정자 서쪽 설악(雪岳)의 모습이다. 만경창파가 펼쳐지고 지척의 해 뜨는 곳에서 금덩이 같은 해가 힘차게 솟아오르고, 은물결에 흰 달빛이 출렁이며, 배의 깃발은 바람에 휘날리는데, 흰 갈매기는 물에 떠 있으며, 하늘과 물이 맞닿은 듯 넘실대고 출렁이는 것은 정자의 동쪽 바다의 모습이다. …중략… 그 동안에 많은 세월이 흘러 비바람에 씻기고 마모된 데다 화재까지 만나 소실되어, 겨우 10여개의 돌기둥만 우뚝 서 있을 뿐이어서 수백 년간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었다.”

김용집의 기록은 이어진다.”무진년(1928년) 봄에 내가 본 면의 직책(職任)을 맡고 있으면서 큰 행사를 기념하여 옛 자취를 추억하는 때에 군수 김극일(金極一)이 잊어버린 역사를 깨우쳐 주는 계기가 있어서 선비들에게 의견을 묻고는 여러 사람이 계를 모으고 정자의 터를 살펴 옛 터의 남쪽 곶(岬)에 청간정을 옮겨 세우기로 하였다. 한 군의 유지들이 힘을 합쳐 재물을 모아 이듬해 봄에 공사를 마치고 이해 칠 월 달 모일에 낙성식을 거행 하였다. 아, 천년의 역사에서 정자는 반드시 그때그때의 모든 흥취를 기약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삶의 궤적이란 인생살이에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니, 어쩌면 이렇게 한결 같은 것이리오! 후대의 사람들이 이어가며 수리한다면 이 정자의 수명은 저 주춧돌과 함께 영원할 것이리라. 1929년(己巳年) 8월 경신일 회재(回齋) 김용집(金溶集)은 서(序) 하노라”.

청간정 자료전시관 앞마당에는 김용집(1868~1942)의 선정비가 있다. 비갓도 없이 손상된 비신에 「面 長金公溶集善政碑」라고 음각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부터 1930년까지 토성면장으로 재임하면서 1928년에 청간정을 현 위치로 옮겨 복원을 하였다. 지금의 청간정은 김용집 면장 덕분이다. 따라서 강원도 고성군은 「관동명승 중건 청간정기」 현판을 속히 복원 제작하여 게시해야 한다. 김용집의 중수기문 마지막 구절처럼 “후대의 사람들이 이어가며 수리한다면 이 정자의 수명은 저 주춧돌과 함께 영원할 것이리라”는 뜻이 실현되길 바란다.

글:최철재(경동대 평생교육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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