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암·천진·교암 해변 침식 반복…‘테트라포트·잠제’ 중심 해안정비 방식 재검토해야
고성의 반암·천진·교암등 해변에서 해안 침식이 반복되고 있다. 수중방파제인 잠제를 설치하고 해변을 복구하는 사업이 이어졌지만, 모래 유실과 해안선 후퇴는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반암해변은 잠제 설치 이후에도 침식과 퇴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항안에는 모래가 쌓이는 반면 북쪽 해안에서는 모래가 빠져나가 침식이 진행되는 현상이 확인되고 있다. 마을 앞 해변 절벽까지 나타났다.
천진·교암 해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수중방파제 등 연안정비 시설에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됐지만 침식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진해변은 국비 239억원을 포함한 사업이 2019년 완료됐고, 교암해변 역시 100억원대 사업이 완료됐지만 해수욕장 개장 공간이 반토막 나는등 해안 침식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문제는 이제 “침식이 심하니 구조물을 더 설치하자”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어떤 구조물을 더 설치할 것인가”가 아니라 “고성 해안의 모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가”를 먼저 밝혀야 한다.
네덜란드는 왜 ‘모래를 막지 않고 움직이게’ 했나
이 지점에서 네덜란드의 ‘샌드모터(Sand Motor)’ 사례는 고성 해안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네덜란드 국토의 약 4분의 1은 해수면보다 낮다. 해변과 사구는 바다로부터 국토를 지키는 중요한 방어선이다. 하지만 바람과 파도, 해류는 끊임없이 해안의 모래를 이동시키고, 해수면 상승은 해안침식의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
네덜란드는 그동안 3~5년마다 북해에서 모래를 채취해 해변에 보충하는 ‘양빈(nourishment)’ 방식을 사용해왔다. 해안선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지만, 반복적인 모래 투입은 해저와 저서생물 등 해양환경을 계속 교란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발상을 바꿨다.
“조금씩 자주 모래를 보충하는 대신, 한꺼번에 훨씬 많은 모래를 투입하면 어떨까.”
그리고 그 모래를 인공 구조물로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 해류가 자연스럽게 해안선을 따라 이동시키도록 하면 어떨까.
이 질문에서 나온 것이 바로 샌드모터다.
2011년 네덜란드는 남홀란트 해안에 2,150만㎥의 모래를 한꺼번에 투입해 거대한 인공 모래반도를 만들었다.
샌드모터는 바다를 상대로 방어벽을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물의 힘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기존 해안관리 방식과 다르다.
대량의 모래를 한꺼번에 투입함으로써 반복적인 해저 준설과 모래 보충을 줄이고, 이후에는 바람·파도·해류가 모래를 서서히 해안과 사구로 이동시키도록 한 것이다.
자연이 모래를 옮기는 과정 자체가 해안관리의 수단이 되는 셈이다.
구조물을 세우는 해안에서 자연이 만드는 해안으로
샌드모터의 목표는 단순한 해안침식 방지가 아니다.
자연적인 모래 이동을 통해 사구의 성장을 촉진하고 해안 방어력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생태·레크리에이션 공간을 만들고, 해안 변화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조성 이후 샌드모터에서는 바람과 파도, 해류에 따라 지형이 계속 변했고 주변으로 모래가 이동하면서 새로운 사구와 모래톱, 석호 등이 만들어졌다.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의 연구자들은 2011년부터 이 변화를 장기간 관찰하고 있다. 샌드모터는 이제 단순한 해안공사가 아니라 자연의 힘을 이용한 해안관리의 실험장이자 국제적인 연구 사례가 됐다.
당초에는 최소 20년 정도 유지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2011년 조성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네덜란드 측은 2041년까지 존속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U의 Climate-ADAPT도 샌드모터를 기후변화와 해안침식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자연기반 해안관리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고성도 ‘구조물 중심’에서 벗어나야
고성의 해안정비도 이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반암·천진·교암 해변에서 잠제와 테트라포트 등 구조물의 효과를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해안 전체의 모래 이동과 퇴적·침식 구조를 장기간 조사해야 한다.
특히 잠제 설치 전후의 해저 지형과 해류 변화, 모래 이동량, 인접 해변의 퇴적과 침식 정도를 비교해 잠제가 실제로 침식을 줄였는지, 아니면 특정 구간의 모래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결과를 낳았는지 객관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수백억원을 들여 구조물을 설치하고도 침식이 계속된다면, 다음 사업 역시 구조물 추가 설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모래의 흐름을 되살리는 방법, 해변에 모래를 공급하는 방법, 자연적인 사구를 복원하는 방법 등 보다 다양한 해법을 검토해야 한다.
고성은 이제 ‘테트라포트를 얼마나 더 놓을 것인가’가 아니라 ‘모래가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해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네덜란드 샌드모터가 던지는 교훈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해안은 콘크리트로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때로는 모래를 돌려주고 자연에게 해안을 맡기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반암·천진·교암 해변의 침식 문제도 이제는 ‘구조물 추가’라는 익숙한 해법에서 벗어나 자연의 해안 시스템 자체를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설악투데이 특별취재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