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시가 29일 ‘2040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Net-Zero)”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6대 전략을 내세운 그럴듯한 계획이지만, 도시 곳곳에서 진행 중인 개발 행태를 보면 실천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탄소를 줄이겠다는 명분 아래, 오히려 탄소를 키우는 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43층 아파트 허가, 교통평가도 없이
대표적인 사례는 갯배 선착장 인근 초고층 아파트 허가다. 무려 43층 높이로 계획된 이 아파트는 속초시 원도심의 가장 중요한 수변 공간에 세워지고 있다. 문제는 이 개발이 제대로 된 교통영향평가조차 없이 허가되었다는 점이다. 관광객과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구간에 고층 건물과 대규모 차량 유입이 예정되었지만, 도시 인프라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검토는 사실상 생략되었다. 탄소중립을 말하면서도 교통 혼잡과 에너지 소비를 더욱 부추기는 개발을 속초시는 방조하거나 조장하고 있다.
영랑호는 개발의 대상이 아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속초 시민들이 아끼는 자연자산 영랑호 일대 개발이다. 시는 이곳을 관광단지로 조성하겠다며 양방향 차도를 개설하고, 고층 숙박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영랑호는 단순한 호수가 아니다. 도심 속 탄소흡수원이며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해온 귀중한 자산이다. 이를 포장도로와 콘크리트 건물로 바꾸는 것이 과연 ‘녹색 성장’인가?
계획과 현실이 따로 노는 행정
속초시는 이번 탄소중립 계획을 통해 에너지 효율화, 친환경 교통, 녹색도시 조성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상은 도시 곳곳에서 고층화, 차량 중심 인프라 확대, 녹지 훼손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탄소를 줄이겠다는 선언이 현실에서는 정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속초의 미래는 자연에 있다
속초는 자연이 주는 혜택으로 성장한 도시다. 바다와 산, 호수와 송림은 관광자원 이전에 시민의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다. 이 기반을 허물고서 지속가능성을 말할 수는 없다. 진정한 탄소중립은 선언이 아닌 선택이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멈춰야 할지에 대한 정책적 결단에서 비롯된다.
속초시는 지금이라도 선언에 걸맞는 행동으로 돌아서야 한다. 도시의 방향을 자연과 공존하는 쪽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탄소중립이라는 말은 결국 빈 껍데기로 남을 것이다.
글:김형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