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령에는 눈이 소복히 쌓여 있다.알프스 마을이라는 명성을 찾은 듯 진부령에서 눈은 반갑다.평지보다 기온이 2도정도 낮다는 진부령 정상은 소한 답게 날이 매서웠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진부령 미술관,새해 첫 전시회는 김재임 조로사 두 여성작가를 모셨다. 조로사의 작품은 눈길을 끈다.회화적인 요소에 디지털 감성이 융합된 형태로 다가오는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고유의 문법으로 말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새벽 강가의 안개처럼 화폭에 깔려 있다.익숙함에서 한꺼풀 시야가 더 확대되는 느낌이고 맛깔이 다르다.우리는 이럴 때 새로운 에너지를 받는다.새해 조로사의 그림과 마주하는 기쁨이다.
작가가 그림 제목으로 삼은 ‘창조와 소멸’만 해도 그렇다.우리에게 익숙한 창조가 조로사의 캔버스에서는 부드럽고 오묘하게 다가온다. 천지창조의 형상을 암시하는 먹구름이 가득한 방식도, 소멸의 칙칙한 스타일도 아닌 발랄하고 밝은 양태로 그려내고 있다.꽃이 파도에 너울거리는 듯 한 묘한 곡선의 곡예위에 새순이 돋고 물방울이 춤춘다.
연보라빛으로 창조와 소멸이 드러나는 모습은 그래서 더 신비롭다. 보랏빛 향연위에 소멸을 느끼기란 여간 쉽지 않고 그래서 우리는 마치 심연의 깊은 곳으로 인도받는 듯한 필과 마주한다. 이 지점이 조로사 방식의 묘사법이고 이 방식은 설득력을 준다.
조로사의 다른 그림에서도 물방울이 흐르듯이 생명이 흐르고 탄생이 춤을 춘다.구체적인 공간이듯한데 사뭇 다른 분위기와 풍경을 연출하는 작가의 의도와 붓놀림은 기가 막히게 신비감을 도출해 낸다. 작가의 그림에서 새로운 환상을 접하고 꿈을 무등 태울수 있다.뻔한 상상력의 한계를 넘으면서 세밀하게 감성의 끝자락을 터치하는 그만의 기법이 주는 편안함이다.
어렵게 보이지만 편하게 마음을 움직인다. 그의 공감력이 넉넉하다는 반증이다.
홍익대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여러 전시회에 참가한 조로사는 2024년 바쁜 스캐줄로 움직일 태세다. 올해는 그의 그림이 더 많은 시선속에 공감의 물방울을 구르게 할 것 같다.
신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