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편안하다. 한림에서 102번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차창 밖 풍경은 낮고 소담스럽다. 큰 건물들이 바다를 가로막지 않고, 오름의 완만한 능선은 물 흐르듯 이어진다. 그 사이를 검은 돌담이 촘촘히 가르며 제주만의 기하학적 미학을 완성한다.
돌담은 집과 집 사이, 밭과 밭 사이, 길과 길 사이에서 하나의 독립된 풍경이 된다. 그러나 제주의 돌에는 아름다움만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돌에는 슬픈 역사가 서려 있다. 노동의 고단함과 삶의 핍박만이 아니라, 이웃 간의 증오와 원한, 그리고 살육으로 얼룩진 제주 현대사의 비극이 돌담 깊숙이 박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는 주름이 많은 땅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의 주름을 넘어, 일상의 주름, 삶의 주름, 역사와 시대의 주름이 켜켜이 쌓여 있는 땅이다.
제주의 이러한 역사성과 장소성은 오랫동안 예술가들의 중요한 탐구 대상이었다. 수많은 작가들이 제주를 재현하고 해석해 왔지만, 박석신의 작업이 특별한 이유는 제주를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주름’이라는 존재론적 개념을 매체 자체의 속성과 결합시킨다는 점에 있다.
박석신에게 한지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그것은 사유의 기반이며 화면을 구성하는 철학적 장(場)이다. 한지는 평평하다. 결을 품고 있으나 스스로는 주름을 만들지 않는다. 평탄하게 펼쳐진 한지는 하나의 평원이며, 그 자체로 평화의 은유가 된다. 작가는 바로 이 평면 위에 제주의 돌담을 구축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돌담은 공간을 분절한다. 그것은 경계를 긋는 선이며, 인간이 세계를 소유하고 구획하는 방식의 표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경계는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 돌담은 화면을 나누면서도 서로를 이어 주고, 분리하면서도 관계를 형성한다. 그 끝에는 언제나 넓은 여백이 존재한다. 그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화해와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특히 박석신의 화면에는 작은 웅덩이나 수면의 형상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것은 단순한 풍경의 일부가 아니다. 긴 시간의 상처를 견딘 땅 위에 남겨진 생명의 흔적이며, 메마른 역사 속에서도 끝내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이다. 그의 작품에서 물은 기억을 씻어내는 망각이 아니라, 기억을 품고 치유하는 생명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박석신이 말하는 평화는 거창한 정치적 선언이 아니다. 그의 평화는 한지의 평면처럼 고요하고, 돌담처럼 묵묵하며, 오름의 능선처럼 낮고 완만하다. 그것은 갈등을 지우는 평화가 아니라 상처를 기억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평화이다. 다시 말해 그의 작업은 주름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주름을 응시하고, 그것을 품으며, 마침내 새로운 풍경으로 전환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박석신의 작품은 제주에 대한 풍경화가 아니라 기억에 대한 철학이며, 장소에 대한 미학이다. 자연과 역사, 재료와 정신, 기억과 치유가 그의 화면 안에서 하나의 조형 언어로 통합된다.
매주 산을 오르며 자연의 호흡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수행적 태도 역시 작품의 정신성과 맞닿아 있다. 그의 화면에 흐르는 절제된 선과 침묵의 여백은 자연을 닮은 것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을 체화한 결과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화려하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으로 더 큰 울림을 만든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에도 수많은 주름이 있다. 개인의 상처와 시대의 균열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인간적 경험으로 귀결된다. 박석신은 제주의 주름을 통해 우리의 주름을 말하고, 한지의 평면을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할 평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결국 『주름진 땅, 제주』는 제주를 재현한 전시가 아니다. 그것은 주름으로 상징되는 삶과 역사에 대한 성찰이며, 그 상처를 넘어 공존과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미학적 실천이다. 박석신의 한지 위에 펼쳐진 풍경은 그래서 제주만의 풍경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회복해야 할 평화의 풍경이다.
신창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