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찍는다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겨울은 풍경의 표면을 단단하게 얼리고, 사람의 말과 표정까지 수축시키며, 열려야 할 감정을 닫히게 한다. 겨울을 찍는다는 건 단순히 ‘찬 계절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풍경과 인간 사이의 미세한 간극을 바라보는 감각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속초에서의 겨울>은 한국 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다. 이 영화는 겨울의 차가움이나 계절적 시간을 배경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오히려 겨울이라는 계절의 결, 즉 겨울의 촉각적 미세함을 서사의 첫 번째 감각으로 호출한다. 그리하여 관객에게 계절을 보는 일이 아니라, 겨울을 ‘살아내는’ 체험을 건네는 영화가 된다.
26일 개봉한 이 영화는 이미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조용한 파장을 일으켰다. 영화제에서의 이 반응은 단순한 화제성이나 작가주의 영화에 대한 관객층의 충성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겨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가’라는 문제를 던져 준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흔한 감정의 서사를 따라가는 대신,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감각의 여백에 귀 기울이게 된다. 한국의 겨울 바다는 종종 서사적 배경이 아니라, 감정을 비추는 거울처럼 등장하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거울을 한 번 더 거울로 비추어, 감정 자체가 아닌 감정의 그림자—그 결을 관객이 느끼도록 만든다.
프랑스계 일본인 감독 고야 가무라의 카메라는 이 모든 감각적 기계를 구축하는 토대다. 그는 속초라는 장소를 처음부터 ‘낯선 곳’으로 인식하면서도, 낯섦을 대상화하거나 이국적 시선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장소를 촬영할 때 흔히 나타나는 과장된 해석이나 문화적 장식이 없다. 대신 도시는 그저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 말의 과잉 없이 화면 안에 놓인다. 속초의 겨울 바다는 대사를 대신할 만큼 묵직한 소리를 낸다. 어둡고 차가운 골목은 인물의 감정이 먼저 닿아 쉬어갈 수 있는 휴식처처럼 등장한다. 시인으로서,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의 풍경 감각에 오래 멈춰 서게 된다. 화면 속 겨울의 결은 속초와 다르지 않으면서 동시에 본 적 없는 속초의 내밀한 얼굴을 비추고 있다.
영화는 원작자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한국계 프랑스 작가로 스위스 이중 국적의 소유자다. 그녀가 2011년 늦가을 속초를 여행하며 썼다는 이 소설은, 문장이 아니라 문장의 사이, 서사보다 서사 너머의 기척이 중요한 작품이었다. 페이지에 적힌 문장보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의 기운, 즉 활자의 공백이 감정의 조직을 이끌어가는 구조였다.
가무라 감독이 이 소설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그 공백의 구조가 영화라는 매체의 리듬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에서 공백은 침묵의 집이고, 영화에서 침묵은 빛과 시간의 집이다. 두 매체는 모두 말하지 않는 부분에서 가장 큰 감정의 구멍을 만들어낸다.
원작의 공백을 영화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문학 원작 영화는 설명을 추가하거나, 서사의 골격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공백을 ‘재현’하려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공백을 메우지 않는다. 공백을 숨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소설의 공백이 가지고 있던 정확한 기압을 영화의 장면에 그대로 배치한다. 관객은 어느 순간 스스로 묻게 된다. “왜 저 인물은 저 말을 하지 않는 걸까?” 혹은 “왜 카메라는 그 얼굴 위에서 이토록 오래 머무는가?” 그런데 이 질문들이 반복되다 보면 다시 또 다른 질문이 도달한다. “정말 그 인물의 감정을 알아야 하는가?” “혹은 감정은 굳이 언어화되지 않아도 되는가?” 결국 관객은 감정을 ‘해석’하는 자리에서 밀려나, 감정을 ‘감각’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영화적 움직임이다.
시나리오의 관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흥미롭다. 전형적인 3장(삼막) 구조나 클래식한 플롯 구성에서 이 영화는 거의 모든 문법을 비껴간다. 인물의 욕망은 저 멀리 희미하게 놓여 있고, 사건은 최소화되어 있으며, 대립이나 이슈는 내면으로 깊게 침잠해 있다. 사건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사건이 없다고 말하는 관점이 오히려 사건을 너무 협소하게 정의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사건은 언제나 외부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이 아니라, 내부에서 천천히 변화하는 미세한 방향성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사건은 인물의 움직임보다 오히려 겨울의 빛의 방향, 바람의 세기, 바다의 음색 변화에서 일어난다. 시나리오에서라면 ‘장면의 기능이 없다’고 지적받을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는 서사의 가장 핵심적인 구조를 이룬다.
감독의 카메라는 인물의 감정보다 풍경의 상태를 먼저 기록한다. 이때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존재를 둘러싼 거대한 호흡이다. 특히 해안가에서 인물이 멈춰 서 있을 때, 카메라는 인물보다 바다의 파동을 더 오래 바라본다. 그 순간 관객은 인물의 표정을 읽기보다 바다의 움직임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추측하게 된다. 이는 시나리오 작법에서 말하자면 ‘감정의 외면화’가 아니라 ‘감정의 물리화’다. 감정이 사물과 풍경의 질감 아래 녹아들어, 인물의 내부가 아닌 외부의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방식. 문학에서도 드물게만 등장하는 이 기법을, 가무라 감독은 미학적으로 정교하게 조율한다.
<속초에서의 겨울>의 미장센은 그래서 촉각적이다. 시각적 미장센이 아니라, 촉각적 미장센. 화면을 통해 감정이 직접 손끝으로 전해지는 느낌을 주는 장면이 많다. 겨울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듯한 장면, 낮은 회색 톤의 하늘이 인물 주변의 공기를 눌러버리는 듯한 장면들. 이 영화에서 색채는 감정의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재료다. 고야 가무라의 색보정은 차갑지만 건조하지 않고, 어둡지만 무겁지 않으며, 회색이지만 텅 빈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겨울의 공기가 가지고 있는 ‘투명한 무게’를 화면 위에 올려놓는 방식이다.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이 영화의 핵심이다. 가무라의 연출 의도를 가장 정교하게 실현한 장치이기도 하다. 카메라는 인물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오히려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인물의 정면을 서둘러 담지 않는다. 바람 부는 해안도로에서 인물이 걷는 장면에서도 카메라는 흔들리지 않는다. 미세한 흔들림마저 억제한 정적인 롱테이크는 오히려 풍경의 진동을 더 뚜렷하게 만든다. 인물의 감정보다 바람의 세기가 먼저 느껴지는 순간, 관객은 ‘감정의 주체’가 인물이 아닌 풍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색채 역시 주목할 만하다. 대부분의 장면은 ‘철분이 빠진 회색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흰빛과 회색빛 사이에 묘하게 끼어 있는 색—그 사이의 색이 이 영화의 감정선을 정확히 규정한다. 때로는 바다의 푸른색마저 낮은 포화도로 처리해, 겨울 바다의 철심 같은 청량함 대신 감정의 단단한 저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색채 설계는 미술감독의 작업과 결합되어 화면의 정서적 온도를 균질하게 유지한다. 화면 속 실내 공간은 거의 모든 장식과 가구가 ‘겨울의 기하학’처럼 느껴지도록 배치되어 있다. 필요 이상의 감정적 장식은 철저히 배제되었고, 실내조명 또한 겨울철 늦은 오후의 빛처럼 낮은 온도로 잡혀 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미술은 풍경과의 충돌 대신, 감정의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방식을 취한다.
음향 역시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가무라는 음악을 절제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번 작품의 음향 설계는 단순한 절제가 아니라 ‘감정의 음압’을 설계하는 정교한 구조물에 가깝다. 파도 소리가 유난히 낮고 길게 깔리고, 바람 소리가 장면을 가르는 칼날처럼 들어오며, 겨울 해변의 잔 진동 같은 잡음이 장면의 여백을 채운다. 이 음향들은 배경음처럼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의 감정에 직접 닿는 방식으로 자리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인물이 말을 멈추는 순간 더욱 분명하게 들리는 바람 소리가 그 인물의 침묵을 해석해주는 역할을 한다. 침묵이 침묵으로 끝나지 않고, 침묵이 음향적 감정으로 변환되는 경험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실내 장면의 잔향도 인상적이다. 겨울의 건조함이 실내 음향의 빈 공간을 도드라지게 만들고, 인물이 방 안에서 문을 살짝 닫는 순간마저도 감정의 미세한 흔들림처럼 전달된다. 이 정교한 사운드 스케이프는 관객을 영화의 내면으로 더욱 깊이 끌어들인다. 이 영화에서 음향은 단지 듣는 요소가 아니라, 겨울이라는 감정의 재질을 구체화하는 물질에 가깝다.
〈속초에서의 겨울〉은 서사가 아니라 감각의 구도로 구성된 영화다. 인물의 과거가 자세히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관객이 인물의 내면과 직접 접촉하는 방식은 설명을 최소화할 때 가능해진다. 풍경의 체류, 감정의 잔향, 침묵과 음향의 교차, 색채의 저온성—all of these elements combined create a cinematic structure that functions much like poetry. 시는 사건을 나열하지 않고 이미지와 감각을 배열함으로써 정서를 구축한다. 이 영화 역시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소리의 사용 또한 각별하다. 동해 바다는 보통 소리로서 강렬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바다는 파도보다 바람이 먼저 들린다. 고요한 영상 위로 흐르는 낮은 바람 소리는 인물의 내면 독백을 대신하는 기능을 한다. 문학적 언어로 치면, 인물의 감정이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기류’로 번역된다. 이런 소리 디자인은 영화제 관객이 특히 사랑하는 감각적 리듬이기도 하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 작품이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감각의 흐름, 즉 서사의 압력보다 감각의 호흡을 선택한 정직한 시선 덕분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깊고도 반가운 울림을 주는 요소는 한국 배우들의 연기 결이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이들의 연기는 속초의 겨울이 단순한 계절적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핵심 동력이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정경순은 이 영화의 정조를 단단하게 붙드는 축과도 같다. 그녀가 구현하는 감정 곡선은 과장과 멜로드라마적 흔들림을 철저히 배제한 채, 겨울이라는 계절의 결핍과 정적을 하나의 ‘움직임의 미학’으로 번역해낸다.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펼쳐진 속초의 겨울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정경순이 보여주는 느린 호흡과 미세한 표정 변화는, 마치 차가운 공기가 인물의 내부를 통과하면서 울림까지 남기는 것처럼 정교하다. 그녀는 말보다 ‘머무름’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해버리는 배우다. 관객은 그녀가 움직이지 않을 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이 절제의 깊이는 명백히 뛰어난 연기에 속하며, 단순한 ‘호연’이라는 말로 축약하기 어려운 존재감의 층위를 갖는다.
박미현의 연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영화의 결을 떠받친다. 그녀는 인물의 감정을 직접 노출하기보다, 일상의 사소한 리듬 속에 감정의 결을 숨겨두는 배우이다. 말하기 직전의 짧은 정적, 손끝의 흔들림, 시선이 옆으로 흐르는 아주 느린 속도—이 모든 디테일이 마치 문장 속 쉼표, 여백, 숨표처럼 작동한다. 박미현의 정적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시간이 가라앉는 순간이다. 그 가라앉음 속에서 관객은 인물의 내면을 천천히 느끼게 된다. 이러한 ‘숨은 연기’는 겨울 실내의 미묘한 공기와 만나 독특한 정서적 온도를 만든다. 영화가 구축하려는 절제된 정서의 톤을 한국적 현실감으로 뒷받침하는 결정적 층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류태호는 영화 전체의 정조를 지탱하는 ‘감정의 저음’을 담당한다. 그의 연기는 결코 요란하지 않지만, 그 낮은 톤이 스크린 아래쪽에서 꾸준히 울린다. 그는 인물의 이면을 과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이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한다. 특히 겨울바다 근처에서 나누는 짧은 대사는, 말 자체보다 말이 끝난 뒤의 공기가 더 오래 남는다. 류태호는 이 영화에서 말없이 견디는 존재의 단단함—마치 겨울 바람을 들이받고 있는 갯바위 같은—을 구현해낸다.
이 세 배우의 조합이 특별한 이유는, 이들이 외국인 감독이 한국의 겨울을 섬세하게 다루도록 돕는 ‘현지의 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고야 가무라 감독의 연출은 절제와 여백, 내부적 떨림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세 배우는 과장되지 않은 한국적 일상의 리듬과 표정으로 그 정서를 현실의 질감에 정착시킨다. 속초의 무채색 풍경과 이들의 절제된 감정 표현은 단순히 잘 어울리는 정도를 넘어 서로를 완성한다.
이처럼 “<속초에서의 겨울>은 사건을 최소화하고 감각을 극대화함으로써 겨울이라는 계절의 정체성을 하나의 미학적 장치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침묵, 바람, 회색, 그리고 공백이 서사의 중심에 놓이며, 관객은 이야기의 흐름보다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라고 말이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문학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풍경의 내면화’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는 풍경을 인물의 내면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대신 인물의 내면을 풍경 바깥으로 내보낸다. 감정이 숨을 곳이 없다. 풍경의 표면 위로 감정이 얇게 퍼지고, 그려지고, 바람에 의해 다시 지워진다. 이 지워짐의 반복이 바로 영화의 호흡이다. 지워지는 감정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풍경의 밀도에 따라 형태를 바꾼다. 문학에서도 이런 감정의 이동을 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나 영화는 가능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가능성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실현한다.
<속초에서의 겨울>은 겨울을 배경으로 둔 영화가 아니라, 겨울이라는 존재론적 조건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감정의 결을 느끼는가를 탐색하는 미학적 실험이다. 겨울의 빛, 겨울의 소리, 겨울의 질감, 겨울의 침묵. 이 모든 요소가 인물의 감정보다 앞에 놓인다. 관객은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이 잠긴 겨울의 물결 속을 ‘떠다닌다’. 이는 영화적 체험이라기보다 감각적 체류에 가깝다.
어떤 관객들은 말한다. 이 영화는 겨울을 찍은 것이 아니라, 겨울이라는 계절의 문장을 촬영한 영화다. 영화적 언어로 말하자면, 감정의 기원을 서술이 아닌 풍경의 물성으로 재배치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그리고 시인의 언어로 말하자면, “겨울의 결을 통과해 인간의 내부를 바라보는, 아주 고요하고 아름답고 단단한 시 한 편”이다.
글:백학기(시인. 영화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