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9기 이병선 속초시정이 출범과 함께 97개 공약에 대한 실행계획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는 공약 검토 보고회를 열어 사업 추진 여건과 재원 마련, 임기 내 달성 가능성을 점검하며 시민과의 약속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체계적인 공약 관리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속초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과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각종 개발사업이 나열돼 있을 뿐, 도시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은 희미하다.
민선 9기가 제시한 4대 전략은 민생경제 회복, 맞춤형 복지, 문화체육도시, 지역균형발전이다. 하지만 실제 핵심 공약들을 보면 영랑호 친환경 관광단지 조성, 북부권 고도제한 해제, 속초형 콤팩트시티, 각종 관광·개발사업 등이 중심을 이룬다. 결국 개발을 통한 성장이라는 익숙한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개발 자체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라는 질문이다.
영랑호 관광단지 조성과 장사·영랑 북부권 고도제한 해제는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정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이 지역 주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풍요롭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단기적인 부동산 개발과 외부 자본의 이익으로 귀결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부족하다.
북부권 고도제한 해제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자칫 난개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자연환경과 경관이라는 속초의 가장 큰 자산을 훼손하면서까지 얻는 개발이 과연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길인지 냉정한 검토가 필요하다.
관광도시 속초의 현안은 산적해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관광객 숫자를 늘리는 개발이 아니라 관광의 질을 높이고 지역 주민의 소득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지속 가능한 관광과 지역 상권의 경쟁력 강화, 청년 일자리와 정주 여건 개선이 함께 가지 않는 개발은 결국 외형만 커질 뿐 지역경제의 체질은 바꾸지 못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결국 삶의 터전을 떠나는 현실이다. 개발로 토지가 수용되고 보상금이 지급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수십 년 동안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주민들에 대한 일회성 보상에 그친다면, 이후 주민들은 어디에서 생계를 이어갈 것인가.
보상금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생업은 평생 이어져야 한다. 지역 주민이 떠나고 외부 투자자만 남는 개발이라면 그것은 도시의 성장이라기보다 공동체의 해체에 가깝다.
이번 공약 보고회에서 시는 실현 가능성과 시민 체감도를 강조했다. 그러나 시민이 체감해야 할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건설사업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도시, 청년이 돌아오는 도시, 기존 주민이 삶의 기반을 지킬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속초의 미래는 더 많은 건물을 짓는 데 있지 않다. 자연과 사람, 관광과 생활, 개발과 보전이 균형을 이루는 도시를 만드는 데 있다. 그 균형에 대한 철학 없이 추진되는 개발은 결국 또 다른 난개발 논란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
민선 9기의 공약은 이제 실행계획 수립 단계에 들어섰다. 지금이라도 필요한 것은 사업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속초가 앞으로 20년, 30년 뒤 어떤 도시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다.
개발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시민의 삶과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개발은 결국 도시의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민선 9기 속초시정이 지금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무엇을 개발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다.
설악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