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호반에 자리한 보광사는 도심 속 사찰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울창한 송림과 깊은 고요를 간직하고 있다. 400년 역사의 절집이 불당골에 자리를 잡은 지도 어느덧 100여 년이 흘렀다.
보광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위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대웅전 뒤편의 관음바위가 있다. 원래는 동해를 내려다보는 산 정상의 거대한 바위에 ‘관음(觀音)’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것을 계기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글씨는 6·25전쟁 당시 이곳에 주둔했던 태권도 창시자 최홍희 장군이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
또 하나는 대웅전 뒤편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바위다. 마치 절을 감싸는 담장처럼 묵직한 모습으로 서 있는 이 바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다. 마애불을 새겨도 좋고, 석굴암과 같은 수행 공간을 만들어도 될 만큼 웅대한 규모를 지녔지만, 그 어디에도 글씨나 조각 하나 없는 백지 같은 돌이다.
아무것도 새기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바위. 침묵하는 이 돌은 말없이 법을 설하는 부처님의 설법처럼 다가온다. 비워 두었기에 더욱 충만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보광사는 이러한 바위의 기운을 일주문에도 이어 놓았다. 일주문 앞에는 각각 35톤 규모의 정초석 두 개가 놓여 있다. 모두 합해 70여 톤에 이르는 거암은 단순한 기초석이 아니라 서원과 기도를 담은 반석이다. 영랑호와 신선봉을 마주하는 자리에 자리하여 대웅전 뒤편의 바위와 하나의 맥을 이루며 사찰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나아가 시민과 영랑호의 보루가 될것이다.
반석이자 정초석이다.
보광사의 바위는 법맥의 연원인 금강산 신선봉의 영험한 바위 기운이 이곳까지 이어져 온 듯한 인상을 준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의 영암(靈岩)의 띠가 보광사와 신선봉을 연결하고 있는 듯하다.
예로부터 바위에는 강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흔들리지 않는 반석의 기운, 세월을 견디는 영암의 기운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수행과 신앙의 상징이었다.
‘돌의 절집’ 보광사에 들어서면 그래서 든든하다. 편하다.세파의 소음이 엉킨 두통이 가라앉는 듯하다. 그 강인한 기운이 영랑호를 굳건히 지키고,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을 살피는 원력의 중심이 되기를, 그리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반석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신창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