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정호는 올해도 어김없이 울산바위 앞에 섰다. 강풍이 몰아치는 설악의 바위 언저리에서 귀마개 너머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를 음악 삼아 스케치를 이어가는 그의 현장정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그가 선보인 울산바위 연작 중 한 점은 백설로 덮인 산자락과는 달리, 바위 부분을 바다의 푸른 색감으로 표현해 눈길을 끈다. 이 푸른 암벽은 산과 바다라는 서로 다른 자연 요소를 병치하면서도 그 경계를 흐려, 마치 속초 바다가 울산바위로 스며든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는 자연의 합일성을 포착하는 동시에, 김정호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단순성’ 개념을 한층 확장하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원래 울산바위는 눈을 잘 허락하지 않는다. 웬만큼 눈이 내려서는 바위가 흰옷을 입지 않는다. 바위 아래 산자락이 흰 광목처럼 표현된 것으로 보아 많은 눈이 내렸음을 짐작하게 하지만, 정작 바위는 여전히 건재하다. 바위는 살아 숨 쉬는 고동처럼 역동적이다.
김정호의 울산바위가 변조되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그의 울산바위는 해석적이고 관능적이다. 마치 바다의 요정이 울산바위에 앉아 백설의 산자락을 내려다보는 듯하다. 이는 울산바위에 천착해온 화가의 내공이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그의 시선과 감수성이 하나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를 담아내는 그의 울산바위 작업은 ‘커다란 단순성’이라는 개념 속에서 수많은 변용과 창조의 형상을 색감으로 감칠맛 나게 표현해왔다. 그는 가히 울산바위 화가라 불릴 만하다.
그는 현실에 대한 충실한 관찰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이를 철학적 메타포와 결합한 비구상적 영역으로 확장한다. 이것은 단순한 작위나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변형이다. 바다의 요정이 울산바위에 깃든 듯한 인상은, 김정호의 감수성이 한 단계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눈 내리는 날, 울산바위를 보러 가야겠다. 머지않아 설 명절이고, 그 즈음 폭설 소식이 있으려나. 동해의 폭설은 늘 지각생이니. 그 무렵 그가 다시 속초에 온다니, 기다려진다.
신창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