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설악의 자유, 백골의 피로 지켜낸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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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광복 80주년입니다. 나라를 되찾은 그 날의 감격은 여전히 뜨겁지만, 우리는 또 하나의 소중한 기억을 함께 되새겨야 합니다. 바로, 설악산과 양양, 고성 일대를 자유의 품에 안긴 ‘백골부대 오색 진격전’입니다.

6·25전쟁 당시, 설악산 일대는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습니다. 백골부대 18연대는 1951년 5월 26일부터 6월 13일까지, 고지와 계곡, 숲과 돌무더기를 넘어 양양 오색에서 고성까지 69km를 진격하며 6만여 명의 공산군을 격파했습니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단순한 지역 탈환이 아니라, 한반도의 새로운 휴전선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분기점이었습니다.

만약 이 진격이 단 열흘, 보름만 늦었더라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설악산의 자유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사학자들이 지적하듯, 당시의 진격이 없었다면 휴전선은 양양 일대에 그어지고 설악산은 북녘 땅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악권이 오늘날처럼 세계인이 찾는 관광지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 그 시작점에는 ‘오색전투의 승리’가 있습니다. 열악한 병력과 보급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이 땅을 지켜낸 백골부대 장병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백골전우회 강원지부장으로서, 그리고 생존 전우들과 유가족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전투의 의미가 지역의 역사 속에 분명하게 자리매김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단편적인 전투 기록이나 일회성 기념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오색에서 고성까지 이어진 진격전은 강원도와 대한민국의 역사에 깊이 새겨져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오는 5월 24일, 양양군 서면 여호와 이레수양관에서 열리는 ‘백골부대 오색 진격전 승전 기념식’은 이 정신을 계승하고자 마련된 자리입니다. 기억은 기리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기억은 곧 책임이며, 실천입니다. 지역은 이 역사를 보듬고, 교육과 전시, 문화로 되살려야 합니다.

백골부대의 진격이 있었기에 설악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 위에서 오늘의 평화와 삶이 있습니다. 오색전투는 단지 군사작전이 아니라, 자유의 최전선이었고 우리 민족의 운명을 바꾼 고지였습니다. 그 고지를 지킨 이들의 이름을, 이제 지역이, 국민이 함께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글:이정균 (백골전우회 강원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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