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문지방을 건넜는데도 겨울 찬기운이 여전한 휴일, 너무도 한적해 마치 전세를 낸 도로 같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구룡령을 천천히 넘었다.
우리 인생이 그렇듯이 길이란 곧게 뻗은 길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고개도 필요하고 구불구불한 길도 필요하다. 인생길이 반드시 직선으로만 이어 나갈 수 없듯이 길 역시 고속도로처럼 쭉 벋은 길만이 유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국도변의 주민들이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것이 그 같은 경우이다.
구룡령. 홍천과 양양을 잇는 오랜 고개인 구룡령도 그 여파로 소외되고 있는 고개이다. 해발 1천미터의 웅장한 고개는 말 그대로 굽이굽이 구절양장으로 백두대간의 이쪽저쪽 양양 서면과 홍천 내면을 연결짓는다.이 길의 풍광은 죽령 옛 길 등 한국 고개마루의 4대 명승에 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입증하고도 남는다. 4계절 어느 때를 지나쳐도 구룡령은 새로운 모습으로 자연의 경외감과 장엄한 풍광을 선사한다.
정상에 서니 백두대간의 우람한 능선이 압도하면서 저 멀리 운해가 내 마음을 태우고 동해바다로 초대하는 듯하다. 실제 구룡령에서 양양에 이르는 길은 우리가 늘 부러움으로 기억하는 스위스 산촌 길의 풍광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빼어나다. 그것만이 아니다. 구룡령 정상에서 갈천리에 이르는 구룡령 옛길은 스토리의 전승이 있는 길이다. 그 옛적에 홍천과 양양사람들이 해산물과 곡식을 교환하면서 넘나들던 고개다. 그래서 바꾸미 고개라고도 한다. 길이 있어 왕래가 가능했고 물물교환이 가능했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증거하고 있는 역사의 길이다. 짐의 무게만큼 고단했던 삶이었고 발걸음이었으리라. 구비를 돌 때마다 다른 장관을 보여주고 다른 색채로 차창을 채색한다.
이럴 때 길의 의미를 한번 새겨보는 것도 힐링 아니겠는가.
길이 굽어져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풍경의 축복은 참으로 크다. 고속도로에서 포착할 수 있는 풍광과는 비교불가다. 우리가 인생길을 가는데 수직상승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아름다울 수 없다는 지혜를 구룡령이 암시하는 듯하다. 그런 생각에 잠기다보니 어느새 갈천에 도착했다. 이전에 붐비던 휴게소는 적막감만 감돌고 인적도 없다. 구룡령이 잊혀진 길이 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마음이 쓸쓸해진다
오랜 세월 우리 삶을 이어주고 희망의 신작로 역할을 하던 길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고속도로탓인가. 도로 여건은 개선되어야 하고 편의성과 안전성은 견고해져야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마치 우리 삶이 직선으로만 거침없이 갈수 없듯이 말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구룡령을 비켜서 씽씽달린다 하더라도 구룡령의 가치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룡령이 갖는 잠재적 가치는 더욱 빛날 수 있다.
이점에 착안해서 길의 회복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잠시 구룡령을 외면하고 있지 거기에 머문 삶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 구룡령에서 양양에 이르는 아름다운 길에 자리하고 있는 소박하고도 진득한 풍경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갈천에서 내려오면서 만나는 양수발전소와 송천떡마을 등 지역이 품고 있는 자산은 고속도로가 지탱해주는 것이 아닌 오랜 친구같은 고갯마루가 연결해주는 것 임을 인식하자. 많이 알리고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 주목도를 높이자. 구룡령에 차소리 사람소리가 더 많이 들리도록 정책적 고민을 집중할 때다.
글:강지우(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