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군 도원리, 신선봉 자락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산촌마을.최근 십수 년간 이 일대에는 커뮤니티센터, 곤충박물관, 산림힐링센터 등 여러 공공시설이 세워졌고, 누적 수십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일개 마을에 이렇게 많은 공공 투자가 이뤄진 곳도 드물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텅 비어 있다. 개관조차 못하고 폐쇄된 건물도 있다.산촌마을에 이런 건물 지어 활성화 한다는 발상 자체가 질못된 접근이다.
계획은 그럴듯했지만, 지역 현실과는 동떨어진 결과였다. 주민 수요와 참여는 고려되지 않았고, 결국 예산만 낭비된 채 방치되고 있다. 도원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성군 전역에서 이 같은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예를 들어 봉포항 회센터는 아직 멀쩡한데도 철거가 예정되어 있고, 어촌뉴딜사업 예산으로 3층 규모의 새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예산을 사용하기 위한 ‘모양내기’식 건설 행정이 여전하다. 정부 사업이 현실과 유리된 채 추진되는 모습을 보면, 주민으로서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건봉리, 삼포리, 봉포해상공원, 오호리 등지에도 커뮤니티센터와 힐링센터, 관리동 등이 수두룩하게 들어섰지만, 실질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손에 꼽힌다.
특히 죽왕면 오호리에 조성된 ‘오호! VR 해양모험관’은 6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인 대표적 사례다. 가상현실(VR) 기반의 해양 체험 시설이라는 거창한 취지와 달리, 현실은 이용객 부족에 허덕이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운영비만 삼키는 구조 속에서 공공 예산은 눈먼 돈처럼 흘러가고 있다. 용도도, 규모도 지역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사업 기획 실패로 끝날 일이 아니다. ‘지역 활성화’라는 명분 아래 건물부터 짓고 보는 고루한 행정의 관성, 이 자체가 문제다.
정작 지역 실정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주민이 중심이 되는 운영 모델을 만들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건물은 있지만 삶이 없고, 공간은 있으나 사람이 빠져 있다. 이런 방식은 고성군이라는 지역의 조건과는 더욱 맞지 않는 접근이다.
이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건축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 사람과 콘텐츠 중심의 지역 정책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이미 지어진 유휴 공간들을 주민 공동체가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 행정은 그 과정에 실질적인 파트너로 나서야 한다.
빈 건물부터 채우자. 건물 짓는 게 공짜가 아니다. 군민들 혈세가 들어간다.‘지역 활성화’라는 판박이 구호 아래 무턱대고 신축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이같은 비효율 빈 건물에 대해 누차 지적이 있었지만 고성군은 아무런 활용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짓고 나면 나몰라라다.
이러다 ‘주민보다 건물이 더 많다’는 말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결코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공공의 역할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속에 사람의 삶과 관계가 숨 쉬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이제는 보여주기식 건설 행정이 아닌, 사람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글:김영근(가명 지역주민)























